2008년 2월 3일 일요일

현대 해군 관련 영화들의 고증 수준에 대한 불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창천… 뭣이라고?

헐리우드 영화를 비롯한 모든 영화에서 고증이라는 것은 어렵고 험한 일입니다. 아무리 잘 해놓고도 조금만 삐끗하면 욕을 얻어먹는 것이 고증입니다.

더군다나 외국이나 과거의 것에 대한 고증은 역사적인 내용이든, 소재이든 고증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렵습니다.

한편으로 고증의 수준이 너무 높아 영화에 대한 몰입도를 떨어뜨리는 문제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중세 프랑스를 배경으로 영화를 만드는데, 화장실이 없다고 배설물을 길가에 잔뜩 뿌리던 현실을 너무 잘 고증해버리면 내용이 무엇이든 그 배설물만 쳐다보게 될 것이니까요.
(중세 프랑스는 지저분한 시설이라는 이유로 화장실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발달한 것이 향수입니다.)





근래 제작된 우리나라 영화 중에 해군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몇 편 있습니다.
(또, 많은 해군을 소재로 하는 헐리우드 영화들이 개봉되었습니다)
이러한 영화들에 있어 용어나 복장에 대한 고증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봐도 무방할 수준입니다.

과거의 해군(예컨데 6.25 전쟁의 해군)을 묘사하는 것이라면 고증이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현대 해군에 대한 고증을 엉망으로 했다는 것은 영화를 제작할 때, 필름에 담는 내용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영화를 제작했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고증의 오류(좋은 표현으로는 옥에 티라는 표현도 있습니다만…) 중에서 특히 눈에 띄는 내용을 적어보겠습니다.

1. 부장에 대한 호칭

붉은시월 등의 헐리우드 영화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XO(Executive Officer : 부장)가 CO(Commanding Officer : 함장)의 바로 아래 서열이라는 뜻으로 부함장이라고 번역을 하면서 부함장이라는 용어가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공식적인 해군의 호칭은 부장이 맞고, 부함장이라는 용어는 사용된 적이 없습니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조선소에서 배를 건조할 때 조선소 직원들은 해군의 용어를 알기 때문에 부장이라는 용어를 주로 사용하는데, 해군에서는 조선소 직원들을 고려해서 부함장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도 있다고 합니다.
가~끔씩 (빵상 아줌마 버전)


2. 복장

잠수함을 소재로 한 영화인 유령에서 심각한 복장 고증 수준을 보여줬습니다.
Die Another Day창천1동대 수준의 수준이었죠.

우선, 이 영화에서는 해군의 복장을 그대로 입고 있는 것이 설정상 맞습니다.
존재하지도 않는 함정이기 때문에 별도의 복장을 만들 수 있도록 예산이 편성되었을리 만무하니까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라운드티는 정복에 입으시길…

잠수함에서는 근무복(카키복)을 입지도 않고, 더군다나 해군은 왼쪽 어깨에 부대마크(견장)을 달고 다니지도 않습니다. (견장은 육군 복식입니다)
게다가 근무복 안에 라운드티를 받쳐입는 것은 미군의 복장입니다.
(명찰의 색도 이상하지만, 설정일 수 있으니 패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미국 수상함 복장에 이런저런 천조각을 붙여놓은 것을 잠수함 복장이라고 입고 나옵니다.

인터넷을 조금만 뒤져도 알 수 있었을텐데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잠수함 근무복 입니다



실제로 잠수함에서 입는 복장은 오른쪽 사진과 같습니다. 라운드티도 없고, 부대마크도 없습니다.

게다가 출항 전의 파티 장면에서는 하정복 속에 넥타이를 매고 있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역시 잘못된 복장입니다.
하정복은 흰색이라 속이 비쳐보이기 때문에 흰색 티셔츠나 (위에서 정우성 씨가 입고 있는) 라운드티를 받쳐입습니다.

현대 해군을 소재로 한다면 (가상의 부대라도) 해군의 자문을 구했으면 좀 더 충실한 고증이 되지 않았을까요?

※ 복장의 고증을 제외하고는 유령은 정말 잘 만든 영화였습니다.
     Dry-for-wet 기술도 기술이지만, 표현하지 못하는 부분을 과감하게 생략한 결단이 완성도를 더욱 높여줬습니다.
블루의 경우 해군의 전폭적 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내용의 황당은 떠나서) 복장은 충실히 재현되었습니다.



3. 용어 (1MC)

여러 용어가 잘못 사용되지만, 제일 자주 나와서 귀에 거슬리는 용어는 1번 마이크입니다.
이 용어는 1MC를 이상하게 해석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용어입니다.

MC는 Main Circuit의 약자로 함정 내부에서 사용되는 방송회로를 의미합니다.
이 중 1MC는 주요 구역에서 함정 전체에 알리는 방송을 하는 회로를 가리킵니다.
(읽을 때는 그냥 one-M-C로 읽으면 됩니다)

붉은시월, 크림슨타이드 등의 영화를 보면 1MC라는 용어가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번역자가 이해를 못하기 때문에) 1번 마이크라는 정체불명의 해석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번역하시는 분들 인터넷도 안 뒤지나 봅니다. Wikipedia에 잘 설명되어있거든요)

문제는 함정 전체에 알리는 방송을 하는 시점이라 상당히 무게감이 있는 상황인데, 엉터리 용어가 등장해서 (이 용어를 아는) 일부 관객들의 맥을 빠지게 한다는 것입니다.

※ 혹시 관객들이 이해를 쉽게 하도록 그런 표현을 썼다면 더 답답한 노릇입니다.
    함정 전체로 방송하는 장면만 봐도 이해할 것이니까요.


자주 등장하기 때문에 귀에, 눈에 못이 박힌 티를 정리한 게 이 3개이고, 간간히 등장하는 오류를 다 세면 한도 없습니다.
이런 영화가 나오면 해군을 전역한 분들께서 인터넷에 이런 오류를 많이들 올립니다.
영화를 제작하시는 분들께서 그런 글들을 참고해주시면 좀 더 헛점이 없는 우리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댓글 7개:

  1. 읽고보니 고증문제가 있군요^^ 그래도 [유령]을 재밌게 볼 수 있었던던 최민수의 훗까시가 잘 먹혀들었다는것, 그리고 국내최초의 드라이 포 웻 기법이 제대로 표현되었다는 것, 또 하나는 [침묵의 함대]에서 가져온 설정이라 시나리오가 제법 탄탄했다는 것이겠죠. 왜 이후로 잠수함 영화가 안나오는지 모르겠다는..ㅠㅠ

    답글삭제
  2. 와우...새로운 사실이군요.

    많이 알고 갑니다ㅎㅎ;

    답글삭제
  3. @페니웨이™ - 2008/02/03 08:27
    설정은 사실, 여기저기 섞어찌개였죠.

    물론 주는 침묵의 함대였지만…

    여기저기 베껴올 설정을 다 베꼈기때문에 베낄 게 없어 나오지 않는 것 같습니다. ^^;;;

    답글삭제
  4. @w0rm9 - 2008/02/03 09:21
    나름 재미있는 이야기죠. ^^;;;

    답글삭제
  5. 블루였나?

    거기서는 동기가 계급이 다르게 나오는 것두 문제 아니었던가?? ^^

    답글삭제
  6. @♡바다.. - 2008/02/11 19:19
    뭐, 건수 쳤나 보지...

    잘 왔네 ^^;;;

    답글삭제
  7. trackback from: 해군 관련 영문 번역에 대한 조언
    이 글은 국내 전문, 아마추어 번역가들의 해군 관련 용어에 대한 심각한 번역 오류를 고쳐주기 위해서 쓴 글입니다. 해군 관련 용어를 번역한 것 보면 정말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이 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군함 명칭 Warship : 군함. 군용 함선(Military Vessel) 일반을 지칭하는 용어입니다. 절대로 전함이 아닙니다. 전함은 Battleship(배틀쉽)이라고 하는데, 거대한 선체에 거포를 가지고 있는 군함의 한 종류..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