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17일 목요일
2009아름다운사람들 공익시상 수상자 김영수 소령님 비디오
수많은 공인(연예인 나부랑탱이들 말고 국가의 녹을 먹고 사는 사람들!)들이 자기 조직은 상명하복이 있네 검새일체론입네 하면서 공인으로서의 의무는 헌신짝 내버리듯 집어던져버리고 비리에 동참하거나 못본체 할 때 조직이 그에게 가할 모든 보복을 각오하며 정의를 실천한 김영수 소령님이 그 주인공이다.
비디오를 보고 나니 두려움과 고난을 견딜 수 있을 것이라는 말씀에 괜히 마음이 무거워진다.
공무원들 중에 "공무원 사회는 상명하복이란 것이 있어 국민은 아오안이고 상급자에게만 복종하면 된다"는 투의 개소리를 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그 공무원님들께 조금이라도 자극이 되었으면 한다.
뭐, 그 공무원분들이 내 블로그에 들어올 일은 없겠지만...
덧. 2분 15초 경에 나오는 "귀관이 정의를 행함에 있어 닥쳐오는 고난을 감내할 수 있는가?"는 사관생도 군훈이 아니라 사관생도 훈에 나오는 문구이다. (사관생도 군훈이라는 것은 없다)
그런데, 이 문구... 김영수 소령님이 사관생도 시절엔 없었다. 그 이후에 추가된 것이다. ^^;
2009년 12월 8일 화요일
저렴하기 짝이 없는 "삼성"의 휴대폰 광고질 - 동영상 편
하지만, 이렇게 삼성의 저렴한 마인드가 밝혀진다는 것만으로도 아이폰이 큰 일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전 포스팅에서도 썼듯이 삼성전자의 휴대폰 마케팅은 저렴 그 자체다.
아예 동영상을 만들어놓고 설치기도 하는데, 하도 같잖아 퍼왔다.
(거니의 노예 여러분. 광고가 싫으시다면 바로 본 포스팅을 내려드리겠습니다)
2009년 12월 7일 월요일
저렴하기 짝이 없는 "삼성"의 휴대폰 광고질
그야말로 싸구려질의 극치를 보여주는 거다.
이건희가 휴대폰을 불태우고 삽질한 이후, 삼성의 휴대폰 전략은 고가폰 이미지를 심기 위한 바이럴 마케팅[footnote]바이럴 마케팅이라고 쓰고 여론 조작이라고 읽는다[/footnote]이 되었다.
생산단가보다 훨씬 많이 받아먹음으로써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은 엄청나게 올랐다.
물론, 비싸게 받아먹는 것은 마케팅의 승리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매년 삼성전자는 하청 중소기업과의 네고를 통해 납품단가를 계속 낮췄고, 제작단가는 계속 떨어졌다는 거다.
(당연히 중소기업은 이 과정에서 아무런 힘이 없다. 낮추라면 그냥 낮추는 거다)
어쨌거나, 이 과정을 통해 삼성전자 휴대폰은 고급형이라는 인식을 강하게 심어줬다.
그러다가 무서운 놈[footnote]물론 아이폰을 말한다[/footnote]이 나온다는 소식이 들렸다.

드레스덴 가는 ICE에서 찍은 독일인 모 씨의 아이폰
삼성전자는 위기의식을 느꼈고, TF를 조직해서 대항마[footnote]대항마는 무슨... 솔까말, 그런 철학도 뭣도 없는 전화기들로는 절대 아이폰과 대적할 수가 없다[/footnote]를 만들 체제를 갖춘다.
그리고, 아이폰이 출시되고, 본격적인 벤치마킹[footnote]이 때의 전략이 무려 아이폰의 기능을 나열한 뒤에 거기 없는 기능을 무조건 때려박는 것이다.
옴니아가 기능이 많지만 철학이나 개념이 없어보이는 건 바로 이 이유다.
쓸모 없는 기능이지만, 아이폰에 없다는 이유만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허다하다.[/footnote]을 통해 삼성의 자칭 대항마인 옴니아2가 나왔다.
시간은 또 흘러, 우리나라에도 아이폰이 판매되는데, 어느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다소 비싸지만 적절한 가격에 판매되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아이폰이 출시되자마자 SKT/삼성이 한 일은? 전폭적인 보조금 지급을 통해 가격을 낮춰버렸다.
어설픈 제품을 비싼 값에 팔아먹는 고급 이미지 전략을 썼다가, 진짜 고급형 제품이 출시되자 그냘 꼬리를 말아버린 것이다.

거침없는 할인, 파격가: 싸구려라는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고민 중.
그것만으로는 모자란 것인지, 이제 본격적으로 스마트폰의 특징에 대해 왜곡을 시작한다.
아래의 표는 무려 삼성전자에서 만든 진정한 스마트폰의 기준이다.

손으로 부드럽게 터치되는 건 터치폰이 아니란 얘기다! 헐~ DMB, AMOLED, DivX가 스마트폰의 기준이란다
세로로 긴 건 다 읽기 힘들까봐 가로 버전도 만들어뒀더라.

한글초성검색이 스마트폰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건지 제발 설명 좀...
아이폰이 출시되었다고 세상이 몽땅 뒤집어질 거란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삼성의 저렴한 마인드가 밝혀진다는 것만으로도 아이폰이 큰 일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2009년 10월 16일 금요일
"다문화가정을 껴안자"는 비겁한 용어는 집어치워라!
대충 생각나는 것만 적어도 아래와 같다.
- 백인은 우월하고, 흑인은 미개하며, 우리는 "표준"이다.
- 한민족은 유태인에 이어 두번째로 똑똑한 민족이다.
덕분에 혼혈이란 말보다는 튀기라는 표현을 더 많이 쓰기도 한다.
그런데, 냉정히 생각해면 우리나라는 단일민족 국가일 수가 없다.
수많은 전쟁이 벌어졌고, 그 중 상당수는 졌으며, 여자들이 끌려갔다 오기도 했다.
권력을 쥔 남자들이 병신이라 그런 꼴을 당했는데, 정작 끌려갔다 오는 여자들이 천대받는 코미디도 생겼다.
(그렇게나 똑똑하다는 우리 민족인데, 판단력 하나는 기가막히게 천박하다)
비교적 근대인 6.25 이후에는 외국군 특히, 미군과의 사이에서 많은 혼혈이 태어났다.
이제 6.25 혼혈이 우리나라에 태어난 지도 60년이 되어간다.
옛말로 강산이 6번도 변한 지금이지만, 혼혈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은 거의 변함이 없다.
학교 가면 선생들이 전학을 종용하기도 하니, 아이들은 자연히 왕따가 되거나 심한 경우에는 범죄의 길로 갈 수 밖에 없다.
(세상 어디도 갈 데가 없을 때 살아남으려면 방법은 딱 둘이다. 도둑질 아니면 구걸)
남자의 경우, 심지어는 군대도 못 간다.
(빽만 없으면) 허리 디스크도 현역을 가는 대한민국에서 군대를 안 가니 억지로 사회에 진출해도 어울릴 수가 없다.
요즘 이러한 문제를 해결한답시고 꺼내드는 용어가 무려 다문화가정이다.
좆선일보는 아예 다문화가정을 껴안자는 컬럼도 쓰더라.
각 지자체에서도 다문화가정을 위한 홈페이지(전북교육청, 광주교육청 등)를 운영하기도 하더라.
이러한 짓거리의 문제는... 다문화가정이라는 용어를 통해 그들은 우리와 다르다라는 인식을 깊이 심어준다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우린 단일문화 가정이야. 우린 쟤들과 달라."라고 가르치는 거다.
하지만, 우리가 혼혈 또는 외국인에 대해 편견을 갖고, 차별하는 것은 그저 인종차별일 뿐이다.
우리는 인종차별을 너무나 당연시해서 그것이 인종차별이라는 의식 자체를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학교 선생이 전학을 종용하는 것도 인종차별이고, 혼혈이 군대를 가지 못하는 것도 인종차별이다.
좀 더 심하게 보면 "다문화가정"이란 용어를 만드는 것도 인종차별일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 주변에 외국인이나 외국계 한국인 또는 한국계 외국인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아파트에도 외국인이 살더라. 홍홍)
이제 "다문화가정" 같은 비겁한 용어를 집어치우고, "인종차별을 금지합니다"라고 제대로 가르칠 때가 되지 않았을까?
덧1. 독일이나 프랑스 같은 유럽국가들을 돌아다녀보니 백인-흑인 부부와 그 아이들을 꽤 많이 볼 수 있더라.
6.25 혼혈이 태어난지 60년이 되어간다. 우린 언제쯤이나 혼혈을 "옆집에 사는 최씨" 정도로 자연스럽게 볼 수 있을까?
덧2. 얼마 전 런던에 놀러 갔을 때 지도를 보며 헤매면서 길을 물어본 사람 중 대부분은 흑인이었다.
그들이 굉장히 친절하게 잘 가르쳐줘 무사히 여행을 마칠 수 있었다.
물론, 백인이 쓰는 전형적인 영국식 영어는 아니어서 알아듣기 어려울 때도 있었지만, 나보단 영어 훨 잘하더라.
2009년 2월 7일 토요일
구스타프 클림트 "키스"의 패러디들
그런데, 정작 그의 작품 중 가장 많이 알려진 "키스"는 오지 못했다네요.
인터넷을 뒤져보니 "그랑자드 섬의 일요일 오후"만큼이나 많은 패러디 작품들이 존재하더군요.
그래서 모아봤습니다.

이건

이 작품을 조각으로 만든 작품도 있더랍니다.

누군가의 기타에 그린

스테인드 글라스 버전의

추상화 버전에 가까운

화풍은 다르지만, 명백하게

모 끌리앙 회원님의 동생분이 펜 하나로 그리신 작품이랍니다. 능력자님...
2008년 8월 14일 목요일
'올림픽 종합순위'라는 거짓말은 언제쯤 없어질까?
전체 일정이 18일 정도니까 초반을 넘어 중반에 접어들었군요.
인터넷 포털사이트를 보면 현재까지의 올림픽 종합순위를 거의 실시간으로 보여줍니다.
언제 포털들이 이렇게나 중요한 이슈에 발빠르게 움직인적이 있나싶을 정도입니다.

네이버를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그냥 보여주니까…
신문들을 보면 1면엔 언제나 전날의 경기결과와 함께 종합순위를 알려줍니다.
그 뿐만 아니라 각 나라의 종합순위에 대한 반응이 얼마나 뜨거운지도 알려줍니다.

모 신문의 인터넷판에 나온 듕귁 vs 미쿡의 다툼기사
그런데, 뭔가 이상하군요. 미국은 감히 올림픽 공식 사이트의 종합순위 집계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집계를 한다네요.
그래서 올림픽 공식 사이트의 종합순위 집계방식을 찾아봤습니다.

ioc 홈페이지의 모든 경기에 대한 국가별 메달 획득 결과엔 이런 문구가 있습니다.
모 신문의 친절한 설명과는 달리 IOC에선 국가별 종합순위를 계산하지 않으며, 이 표는 정보전달을 목적으로 할 뿐이랍니다.
(IOC does not recognise global ranking per country; the medel tables are displayed for information only)
올림픽은 (비록 엄청난 상업주의 및 국가 패권주의가 지배하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정치색이나 상업성을 배제한 채 이루어져야 합니다.
또한, 오로지 스포츠를 통한 인류의 공존과 평화증진만을 목적으로 해야 합니다.
하지만, 올림픽은 냉전시절에 (구)동독, (구)소련, 대한민국 등의 나라에서 국가 체제의 우월성을 증명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었습니다.
(88올림픽에 결승전에서 딱 죽지 않을 만큼만 얻어터진 박시헌이 금메달을 딴 것은 오로지 서독보다 종합순위에서 앞서고 싶다는 노태우의 바램 때문이었죠)
지금은 올림픽이 국가 체제의 우월성을 증명하는 수단으로 인정되는 시대도 아니며, IOC에서는 종합순위라는 것을 전혀 취급도 하지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엔 이 종합순위라는 유령이 아직도 살아숨쉬고 있습니다.
이젠 종합순위라는 거짓말이나 금메달에 목숨거는 것을 버리고, 땀흘리며 경기에 임하는 모든 선수들에게 박수를 쳐줄 때가 되지 않았을까요?
2008년 4월 12일 토요일
내 인생에 대단히 부정적인 모습만 보여준 학교 선생들

어찌저찌 찾은 모교 사진. 럭키 소계 아파트의 압박 (우리 다닐 때 한참 만들고 있었는데…)
1. 고딩때 영어 선생
스스로 고교 선배이기도 했던 이 선생은 졸업 이후 만나서 제자인 저에게 돈을 빌려달라시더군요.
순수한 마음으로 돈을 빌려줬더니, (네, 빌려준 것 부터 실수였습니다)
안 갚아주려고 이리저리 도망다니길래 결국 찾아가서 받았습니다.
학교 그만두고 학원을 운영하고 있을 때, 내가 전화할 때마다
입금시키라고 했는데, 아직 안 들어왔냐는 어이 상실한 소리만 하던데, 내 IQ가 니 IQ인줄 아냐?
2. 고딩때 지구과학 선생
옆반 담팅이었는데, (졸업한지 20년이 되어가는 지금도 만나는) 친구네 집에 가정방문 갔더니 촌지 안 줬다고 교무실 불러놓고 한 말씀 하셨죠.
ㅇㅇ아, 너희 집은 그리 가난한 모양이지?가르치기나 좀 제대로 가르치지… 전 지구과학이 그렇게 어려운 과목인줄 몰랐습니다.
고3때 지구과학 선생님이 다른 분으로 바뀌지 전까지는요.
3. 사촌 누나 (과학 선생)
고모님께는 2남 4녀를 두셨습니다. (모두 저에겐 형님/누님 들입니다)
첫째가 누나인데, 시골은 으레 그렇듯이, 첫째 누나는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집안일을 했고, 이렇게 얻은 수익으로 다른 형제들은 대학교육을 받았습니다.
그 중 둘째 누나는 생물 선생이 되었고, 땅이 좀 있는 부자와 결혼도 했습니다.
또, 건축업을 하는 오빠의 도움으로 땅에는 건물이 들어섰고, 건물주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첫째 누나의 매형이 위암으로 돌아가셨고, 누나는 갑자기 억대 빚을 지고 말았습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분은 아실 겁니다. 남자는 억대 빚을 갚으며 농사를 지을 수 있는데, 여자 혼자는 불가능합니다.
방법이 없어 고민하던 첫째 누나는 그 중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둘째 누나를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돈이 없다.며 등을 돌렸습니다.
어릴 때 컴퓨터 학원을 오랫동안 다녔는데, 저는 상당히 말썽꾸러기여서 학원 선생님께 상당히 많이 (그리고 자주) 맞았습니다.
어느 날 개인적인 사정으로 학원을 그만두던 선생님이 학원을 그만두신다면서 저에게 그러시더군요.
난 학원 강사지만, 누구를 가르치는 것은 지식만을 가르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이상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초등학교 4학년(11살)인 저에겐 너무 어려운 얘기였습니다.
(그래서 많이 때렸다. ㅠ.ㅠ)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야 그 말씀을 (겨우 조금만) 이해하게 되었으니까요.
지금은 그 마음과 그 말씀이 너무나 고맙습니다.
이리저리 공교육이 많이 붕괴되었다고 선생들 한탄 많이 합니다.
이 문제의 원인 중 가장 큰 것은 학부모들의 의식입니다.
하지만, 그 원인 중 선생들의 의식상태도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철이 들고 나서 더욱 더 그 생각이 강해집니다.
과연 내 인생의 학창시절 전체에서 스승이 몇 명이나 있었지?
단순한 지식의 전달이 아닌 교육 철학을 전달하며 인생의 디딤돌이 되어준 스승님은 계시기나 했던가?
2008년 3월 24일 월요일
사립명문 진성고 문제에 학부모는 책임이 없는가?

요즘 인터넷에서 사립명문(?) 진성고 얘기가 이슈입니다.
학교 당국과 소속 교사들의 잘못을 많이들 비난하시는 것 같습니다.
패밀리 비지니스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이사장 집안 년놈들끼리 다 해먹는 것을 보니 진성고 사건과 전혀 무관한 저도 머리에서 김이 오르더군요.
(욕 썼다고 너무 뭐라고 하지 마시길… 최대한 자중하고 쓴 겁니다)
그런데, 사태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잘못은 학교당국에만 있고, 남아있던 학생들도 잘못이라는 글들이 꽤보였습니다.
저는 이 문제가 오랫동안 곪아온 학부모들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탈무드에서 물고기를 잡아주지 말고, 낚시하는 법을 가르쳐주라고 했었죠.
교육의 목적은 살아가는 답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답을 찾을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입니다.
(웃기게도 이런 학교에 자식을 보내는 학부모 중에서 이 말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학부모들이 자식에게 물고기를 잡아줄 학교를 일방적으로 정해주면서 문제가 시작된 것입니다.
아마도 학부모님들은 학교에 대해서 알아보셨을 것이고, 열악한 환경이나 비리도 대부분 아셨을 겁니다.
(평준화 학교가 아닌 다음에야 눈 감고 찍는 짓을 하지는 않았겠죠?)
그 때 아마도 이런 논리로 넘어가지 않았을까요?
비리 좀 있으면 어때, 우리 자식만 S대 가면 되지!자기 자식들이 어떤 꼴을 당하든지, 우리 나라의 교육이 어디로 가든지, 다 덮어놓고 내 자식이 명문대만 가면 된다는 생각이 다수의 생각이 되면서 저런 말도 되지 않는 일이 벌어진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진성교 학생들은 학교의 문제에 대해서 가끔씩은 부모님과 상의를 했겠죠.
그 때도 역시 이랬을 것입니다.
"조금만 힘들어도 참아. 2년만 있으면 졸업하니까…"
그러다보니 다 썩어가는 건물에서 몸수색이나 당하면서 살아가는 일이 10년 넘게 벌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 자녀들을 인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학교에 보내고, 벗어나지 못하게 종용한 학부모님에게는 이 사태의 책임은 없는 것일까요?
덧. 어쩐지…
비리 좀 있으면 어때, 경제만 살리면 되지!라는 논리를 통해 당선되어놓고는, 경제성장률 목표치를 계속 밑으로 찍어대고 있는 무개념 누군가가 생각납니다.
2008년 3월 2일 일요일
학원 교육에서 절대 배울 수 없는 사회성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 지…
현재 성인으로서 결혼적령기에 있는 분들이나 자식을 낳아서 기르는 분들이 어렸던 시절을 생각해보면 지금과는 많은 부분이 달랐습니다.
예전(대략 20-30년 전쯤)에는 아버지는 바쁘게 직장생활을 하셨고, 어머니는 집에서 자식들을 기르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리고, 학원은 미술, 피아노, 컴퓨터 학원 가운데 하나 정도만 다니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그것도 좀 여유가 있는 집에 한해서만 말이죠)
가끔 속독 학원이니, 바이올린 학원이니 하는 곳을 다니는 경우도 있었지만, 워낙 특이한 경우니까 패스~
당시에 학생들은 학교 마치면 친구들끼리 모여서 놀았습니다. 축구, 야구, 술래잡기, 얼음땡 기타 등등을 하면서 말이죠.
그러다보면 흔히 의견충돌로 인해서 말다툼이 시작되고, 말다툼은 곧잘 주먹다짐으로 업그레이드 되며, 결국 싸움 잘 하는 친구가 분위기를 주도하게 되었습니다.

코피 흘리면 끝!
이 시기가 되면 여자아이들이 남자아이들보다 우위에 서기 시작합니다.
힘만 센(힘세고 무식한) 남자아이가 억지를 부리면 똑똑한 친구(주로 여자아이들)가 탁 튀어나와 따지면서 상황을 정리합니다.
남자아이는… 흥! 한 마디 하고 가버립니다. 말이 안 되니까요…
이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사회성이라는 것을 체득해갔습니다.
요즘은 부모님은 맞벌이로 집을 비우고,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아이들은 학원으로 내몰립니다.
아이들의 스케쥴은 학원1, 학원2, 학원3… 하다보면 하루가 끝납니다.
학원에 가면 친구들끼리 다퉈도 선생님이 다 정리해줍니다.
그러다보면 사회성을 익힐 시간은 없습니다.
악플러가 늘어나는 것이나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들이 이러한 사회성 형성 기간의 누락과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사회성을 형성할 수 있는 기간을 아이들로부터 빼앗아간 원인은 역설적이게도 부모님의 선택입니다. 더 잘 가르치기 위해 돈을 더 벌어야겠고, 돈을 더 벌기 위해 맞벌이를 하고, 맞벌이를 위해 학원에 내몰다보니 자식들이 사회성을 기를 시간을 주지 못하는 것이죠.
물론, 학원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운 아이들은 사회에서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갈 수 있겠지만요…
2008년 1월 29일 화요일
우리나라가 정말 "동방예의지국"이었을까?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녜의-/-녜이-〕 [명사] [예의를 잘 지키는 동쪽의 나라라는 뜻으로]
예전에, 중국에서 ‘우리나라’를 이르던 말.
약 2300년 전에 공자(孔子)의 7대손 공빈(孔斌)이 고대 한국에 관한 이야기를 모아서 쓴 [동이열전](東夷列傳)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풍속이 순후(淳厚)해서 길을 가는 이들이 서로 양보하고, 음식을 먹는 이들이 먹는 것을 서로 미루며, 남자와 여자가 따로 거처해 섞이지 않으니, 이 나라야말로 동쪽에 있는 예의바른 군자의 나라(東方禮儀君子之國)가 아니겠는가?
동이열전 좀 더 보기..
일찍이 그 나라에 자부선인(紫府仙人)이라는 도에 통한 학자가 있었는데, 중국의 황제(黃帝; 중국인의 시조)가 글을 배우고 내황문(內皇文)을 받아 가지고 돌아와 염제(炎帝) 대신 임금이 되어 백성들에게 생활방법을 가르쳤다.
순(舜) 이 중국에 와서 요(堯)임금의 다음 임금이 되어 백성들에게 사람 노릇하는 윤리와 도덕을 처음으로 가르쳤다. 소련(小連)과 대련(大連) 형제가 부모에게 극진히 효도하더니 부모가 돌아가시니까 3년을 슬퍼했는데 이들은 동이족의 후예였다.
그 나라는 비록 크지만 남의 나라를 업신여기지 않았고, 그 나라의 군대는 비록 강했지만 남의 나라를 침범하지 않았다.
풍속이 순후(淳厚)해서 길을 가는 이들이 서로 양보하고, 음식을 먹는 이들이 먹는 것을 서로 미루며, 남자와 여자가 따로 거처해 섞이지 않으니, 이 나라야말로 동쪽에 있는 예의바른 군자의 나라(東方禮儀君子之國)가 아니겠는가?
이런 까닭으로 나의 할아버지 공자(孔子)께서 "그 나라에 가서 살고 싶다"고 하시면서 "누추하지 않다"고 말씀하셨다.
서로 양보하고, 음식을 먼저 먹겠다고 나서지 않고, 남녀가 따로 거처하는 것을 예의라고 표현했는데, 지금의 개념으로 생각해보면, 타인을 배려하는 풍속이었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이 글을 썼다는 공빈이 공자의 후손임과 공자의 유교사상을 생각하면 남녀에 대한 언급은 좀 복잡할 것 같아 패스~)
그런데, 예전부터 어른들이 가르쳐주신 것들을 곰곰 생각해보면 예의가 무엇인가하는 의문을 갖게 하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남을 배려하지 않고 상처주는 행위가 예의와는 상관없는 문제라고 가르치거나, 아무런 상관 없는 것을 예의라고 가르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여기 그 중 3가지를 적어보겠습니다.

전쟁터에서 장애를 입은 분들도 많았습니다. 6.25나, 베트남전에서…
미국 입장에서 참전한 한국의 전쟁은 6.25동란밖에 없었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아니거든요…
많은 부모님들은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병신"이라고 부르고, 자식들을 가까이 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러한 가르침이 예의바른 것에 대한 올바른 가르침이었을까요?
2. 공사판 노무자
위험한 공사판에서 열심히 일하시는 이 아저씨들이 아니면 63빌딩도 없고,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옆을 지나갈 때 많은 부모님들이 꼭 한 마디씩 하셨습니다.
"너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커서 저렇게 된다!"
그것도 그분들 다 들리게 말이죠. 자식들에게 그 얘기를 하는 것인지 공사판에서 일하시는 분들에게 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예의바른 것에 대한 올바른 가르침이었을까요?
(제 주변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이) 방학 동안 용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학생부터, 사업에 실패해서 다시 시작하려는 분들, 전문 기술을 갖고 일하시는 미장공 여러분들이 그 곳에서 땀흘려 일하고 계십니다.
물론, 대학교에서 관련 교육을 받고 현장 감독관으로 일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게다가 그 분들중 상당수는 또 누군가의 부모님이십니다.
3. 왼손잡이
(당시 유행하던 김병조 씨의 '지구를 떠나거라'를 정말 똑같이 따라하는 재미있는 친구였습니다)
이 친구는 방과 후까지 남아서 선생님과 함께 바른손으로 글 쓰는 법을 익혀야 했습니다.
못 쓴다고 혼나가면서 말이죠.
왼손으로 밥을 먹고 글을 쓰는 행위가 예의에 어긋난 행동이기 때문이랍니다.
그것은 예의바른 것에 대한 올바른 가르침이었을까요?
많이들 공감하실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아니시라면… 부럽습니다. 너무나 좋은 환경에서 자라셨습니다)
예의라는 것, 그렇게 특별한 것 아닙니다. 좀 더 남을 배려하고, 남의 입장을 이해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교육은 거의 없었고, '예의란 어른들 말 잘 듣는 것. 끝!'이라고만 가르쳤었습니다.
서로를 좀 더 배려하며, 서로에 대한 예의를 지키고, 불편한 사람들의 입장을 조금만 더 이해하면 좀 더 나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요?
어떤 사안에 대한 비판이나 나아가서 비난은 그런 배려나 이해를 한 뒤에 해도 늦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덧글. 국개론이라는 말만 듣고 찾아보지는 않았는데, 마침 w0rm9님께서 정리해놓은 자료를 링크해주셔서 읽어보니 왠지 공감이 가는 말들이 많았습니다.
(미리 말씀드리는데, 거기엔 거북한 표현이나 내용이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으니 읽지 않기를 권장합니다)
그 중에서도 "동방예의지국"에 대한 부분은 상당히 와닿았습니다.
2007년 12월 11일 화요일
여전한 지하철 화장실의 낙서들...
지금은 지하철이 없는 지방(포항)에서 살기도 하고, 자가용을 이용하기 때문에 터미널에 갈 일이 거의 없습니다.
6년 전의, 또 그 전의 지하철이나 버스터미널 화장실을 생각해보면 벽과 출입문에 잡다한 낙서가 많이들 적혀있었습니다.
이젠 금속 재질로 만들어서 그런 것인지, 사람들의 의식이 많이 변해서 그런 것인지, 삶의 냄새가가 나는 그런 낙서를 보기 힘들죠.
아니, 힘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오랜만에 화장실에 가보니 여전히 낙서는 있었습니다.
그것도 예전보다 훨씬 불쾌하고 당장 지워버리고 싶은 낙서들만 있더군요.
애인 어쩌고 하는 것도 불쾌했지만, 신장(장기판매) 관련 낙서는 정말 보기 싫었습니다.
화장실이 많이 깨끗해진 것 같지만, 오히려 더 지저분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