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7일 금요일

[퀀텀 오브 솔러스]: 소설에 다가가려 노력한 007 영화

스포일러가 조금 있는 리뷰입니다.
아직 관람을 하지 않으신 분들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1. 제목

영화와 주제곡 모두 처음부터 이상한 점이 있는데, 제목의 의미를 알 수 없다는 점입니다.
일단, 퀀텀 오브 솔러스(Quantum of Solace)라는 제목은 조직의 이름이 퀀텀이란 점을 제외하곤 영화에서는 아무런 의미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또한, 주제곡 Another Way To Die라는 제목 역시 이 영화의 주제곡 제목이란 생각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로 생뚱맞습니다.

굳이 끼워맞춘다면 도미닉 그린이 본드가 생각하지 않는 방법으로 죽었다는 뜻일까 몰라도 말이죠.



2. 건배럴씬


처음부터 당황을 한 것이 [퀀텀 오브 솔러스]의 오프닝에서 [카지노 로얄]과 마찬가지로 건배럴 씬으로 시작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이 부분은 [카지노 로얄]은 아직 제임스 본드가 00 요원으로서의 자격을 갖추자 마자 즉, 2명을 제거하자마자 건배럴 씬을 보여주어, 건배럴 씬은 007 제임스 본드의 상징이란 의미를 부여한 직후라 다소 모호합니다.

아마도 사적인 복수나 마음의 짐을 덜어내는 등 성격 형성 과정이 완료되고 나서야 진정한 제임스 본드라는 뜻을 품고 있는 것 같습니다.


3. 주제곡


이번 [퀀텀 오브 솔러스]의 주제곡은 역대 007 영화의 주제곡 중에서 뒤에서 순위권이란 생각이 많이 듭니다.
멜로디도 그렇게 몰입감을 느끼게 해주는 것도 아니었지만, 특히, "워어어어~"하는 부분은 "가사 쓰기 귀찮아서" 그렇게 구성했단 생각이 절로 듭니다.

게다가, 클래식한 느낌의 영화의 방향전혀 맞지 않은 느낌이란 점까지 보면 음악이 좋은 평을 받을래야 받을 수 없다는 것은 명확합니다.


4. 악당


이 영화에서 정말 문제는 악당이 누구인지 모르겠단 점입니다.
화이트는 "We have people everywhere"라고 빈정대긴 하지만, 정작 퀀텀의 사람들은 화이트 한 명을 제외하고는 악당다운 뚝심과 끈기라곤 찾아볼 수 없습니다.

내가 좀 깡다구가 있긴 하쥐


어떠한 고문에도 불지 않고 버티려는 모습의 "쫄따구" 화이트와 달리 주적인 도미닉 그린은 그저 본드랑 차 한 번 탔을 뿐인데 술술 불어댑니다.
(뭐, 이 부분 역시 너무 생략해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요...)

앞부분엔 마치 그린이 퀀텀의 두목인 듯한 인상을 살짝 풍기려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제거되는 모습을 보면 그 역시 까불어대는 악당 중 하나란 생각도 듭니다.

결국 화이트는 본드와 마주치지도 않고 지나가는데, 다음편엔 꼭 다시 만나서 끝장을 보면 좋겠습니다.


5. 구성

영화의 구성에서 좋지 않은 평가를 받는 부분이 전체적으로 뭘 말하는지 모르겠다는 점입니다.
즉, 화이트를 족쳐 퀀텀이 뭔지 알아냈는데, 막상 퀀텀과의 관계는 사업 하나를 방해한 것이 전부입니다.

게다가 퀀텀이란 조직의 정체를 관객들에겐 전혀 얘기해주지 않아 오히려 드라마 쪽으론 한쪽이 비어있는 느낌도 줍니다.

그런데, 다른 관점에서 보면 퀀텀을 3부작으로 만들고 이 중 2편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이는 이미 007 소설에서 등장했지만 영화세계에선 묻혀버린 3부작을 복귀시키려는 것 같습니다.

블로펠드 트릴로지를 이루는 <썬더볼> - <여왕폐하의 007> - <두번산다>의 구조를 보면,
1. 조직의 큰 사업을 막아내며 조직의 정체를 발견
2. 조직을 궤멸수준으로 파괴시키나, 아내가 피살당함
3. 마지막 끄나풀을 찾아내서 피튀기는 싸움을 통해 복수
의 탄탄한 구성을 갖췄습니다.

그런데, [카지노 로얄]과 [퀀텀 오브 솔러스]를 퀀텀 3부작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1. 조직의 이름도 전혀 모르고 이용만 실컷 당하다가 마지막에 겨우 살아남
2. 조직의 큰 사업을 막아내며 조직의 정체를 발견
3. 조직을 궤멸수준으로 파괴시킴
의 구성을 위해 만들어진 플롯이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일부 캐릭터나 구성이 낭비된 모습이 보였다는 점은 아무리 생각해도 아쉽습니다.
특히, 영국 수상 보좌관의 비서를 제거했는데, 알고 보니 요원이더라는 내용이나, 사무직인 필즈 요원이 괜히 본드와 숙면을 취한 다음 그린에게 까불다가 기름 뒤집어쓰고 죽는 내용 등은 안 들어감만 못한 장면인 것 같습니다.


6. 액션


관객분들 중에는 [퀀텀 오브 솔러스]의 액션이 지루했다는 평도 있더군요.

하지만, 그렇지는 않다고 봅니다.
댄 브래들리가 촬영한 아날로그 액션은 스피디하고, 초반부 액션들은 숨쉴 틈을 주지 않고 배치되어 몰입감을 최대한 높여줬습니다.

[본 슈프리머시]와 [본 얼티메이텀]의 스턴트를 감독하며 보여준 그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합니다.
(흔히 최근 007 두 편과 본 시리즈의 액션을 비교하는데, 스턴트 감독이 같은 분입니다. ^^;;;)

하지만, 문제는 전체적으로 드라마와 조화가 잘 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앞부분에 쉴새 없이 액션을 몰아치다 다시 드라마로 넘어간 뒤에도 가끔씩 액션을 보여주어 긴장감을 늦추지 않게 배치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엔딩 직전에 베니스 액션 씬을 집어넣는 등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했던 전작 [카지노 로얄]과 비교되게, 불탄 건물에서 탈출하는 본드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사실 이 장면은 [뷰투어킬]불난 시청 건물 탈출씬의 오마주인데, 그 장면이 무어 할아버지가 다찌마리를 소화하지 못해 삽입되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후반부에 힘이 빠진 원인 중 하나라고 판단됩니다.


7. 클래식 및 소설의 귀환



전술했던 강력한 악당 트릴로지 외에도 본드의 아이콘인 월터 PPK, 친구의 죽음에 대한 복수 등 이번에도 많은 부분에서 클래식한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한 흔적이 보입니다.
특히, 르네 마티즈는 원작에서의 필릭스 라이터를 대신하여 희생됨으로서 복수에 더욱 민감해지는 제임스 본드의 캐릭터 완성에 일조하리라 봅니다.

또한 영화 속에서 계속 등장하지만, 직책이나 근무지를 도통 알 수 없었던 필릭스 라이터가 적절한 근무지와 직책을 부여받는 것은 핵심 캐릭터의 입체감과 현실감을 키우는데 일조합니다.
(소설에서는 2번째 작품인 <죽느냐 사느냐>에서 상어에게 물어뜯깁니다. ㅡㅡ;;;)

한편으로, 약간이나마 정치적 이슈를 끌어들인 점 역시 소설 속의 제임스 본드와 비슷해지려는 노력입니다.
(걸작 007 소설 <위기일발>은 사실 영국 MI6와 소련 KGB의 피튀기는 한판 승부였습니다. 정치적 중립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고 말이죠.)


8. 오마쥬

[퀀텀 오브 솔러스]는 여러 007 영화의 장면을 오마주했는데, [어나더데이]삽질 패러디와는 달리 적절히 품위있는 오마주를 보여줍니다.
뭐, 전술했던 [뷰투어킬]의 오마주는 좀 실망이긴 했지만 말이죠.

대략 [위기일발], [골드핑거], [나를 사랑한 스파이], [문레이커], [뷰투어킬], [리빙데이라이트], [살인면허]의 7편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문레이커]의 오페라장 대결, [뷰투어킬]의 화재건물 탈출, [위기일발]의 보트신 오마주 장면들



댓글 18개:

  1. trackback from: 헷갈리는 007, 퀀텀 오브 솔러스
    알리샤키스&amp;잭화이트의 007 주제곡 듣기 - &#8220;Another Way To Die&#8221;

    정체성을 잃은 007이라고 하려다가 생각해보니 그동안의 007의 정체성이 뭔지도 잘 모르겠고 제목의 의미도 어렵고 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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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trackback from: [리뷰] 007 퀀텀 오브 솔러스 (Quantum Of Solace, 2008)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뻔 했던 007 시리즈를 화려하게 부활시킨 마틴 캠벨 감독의 2006년작 "카지노 로얄"을 이어서 2008년 돌아온 007 시리즈 22편 "퀀텀 오브 솔러스"는 말그대로의 속편입니다. 그간의 007 시리즈가 몇몇 작품간의 일종의 연계성은 있었지만, 각각의 분리된 한편으로 봐야했다면 이번 "퀀텀 오브 솔러스"는 전작의 스토리가 그대로 이어져 전개가 됩니다. 미스터 화이트를 잡아온 본드와 M은 그 배후 조직에 대한 정보를 캐내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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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이번 영화는 다른 의미로 유럽쪽의 연기파 배우가 헐리우드식 블럭버스터에서 얼마나 하찮게 소비되는가를 볼 수 있는 영화였습니다. 처음에 마티유 아말릭이 악역에 캐스팅 되었다고 해서 기대했는데 말이죠 ㅜ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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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trackback from: 007 퀀텀 오브 솔러스 _ 카지노 로얄의 속편으로'만' 보자
    007 퀀텀 오브 솔러스 (Quantum Of Solace, 2008) 카지노 로얄의 속편으로'만' 보자 오랜만에 개봉일에 영화를 보게 된 것 같습니다. 그 만큼 007의 22번째 시리즈인 <퀀텀 오브 솔러스>는 초기대작은 아니더라도 나름 전통의 시리즈로서, 그리고 다니엘 크레이그의 본드를 워낙에 마음에 들어하는 사람으로서 기대작이었으며, 감독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음에도 개봉일날 다른 영화들을 재쳐두고(사실 뚜렷한 경쟁작이 없기도 합니다만;;)극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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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스테판 - 2008/11/07 11:43
    아... 그러고 보니 그런 면도 있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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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trackback from: 스물두번째 007
    11/5(수) 19:20 강남역 시티극장 1관시티극장에서 다시는 영화 안본다. (미네랄!)절반정도 비어있는 좌석을 봤을때 이미 각오는 했지만 중간에 소리가 안들리는 사고로 인해 영화보는 내내 짜증스러웠다. 롯데시네마에 이어 병신극장 블랙리스트에 추가. (아줌마, 병신 추가요~)- 스포질 없음여인의 몸뚱아리 형상의 모래가 흘러내리는 오프닝까지는 참 좋았는데 그다음 추격씬이나 격투씬등이 전혀 긴장감을 주지 못했다. 맘먹고 집중 해볼라면 소리가 확 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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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역시 일반인과 전문가는 접근하는 방법이 차이가 나는군요. 대단한 정보량ㄷㄷ

    처음에 나오는 액션씬은 저도 좀 별로였습니다. 전작에서 이어지는 하나의 (운송하는) 이야기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그다지 큰 의미를 둘 필요가 없지만, 사람들의 기대는 또 그게 아니더군요. 무조건 오프닝 액션은 강렬해야 한다는... 카지노 로얄이 워낙 강했던 탓도 있고... (모든건 시티극장 때문OTL)

    액션 자체는 괜찮았다고 생각하는데 액션까지 도달하는 과정이 너무 자연스럽지 못했습니다. 종탑에서 싸우는 장면이 있기전 종탑에 올라갈때 이미 그런 액션이 나올것 같더군요. 또 사막에 난데없이 그런 건물이 아무 설명없이 등장했을때 종 생뚱맞다 싶었는데 결국 탈출씬을 위해 마련한 장소였구나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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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okto - 2008/11/07 20:02
    그저 액션 영화는 액션 영화 전문 감독이 맡아야 된단 생각 뿐입니다.



    마크 포스터는 그렇게나 불난 건물에서 탈출하는 장면이 그리웠나 봅니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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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trackback from: 나의 제임스 본드를 돌려줘!!
    007의 22번째 시리즈 퀀텀 오브 솔라스(Quantum of Solas)에 나오는 제임스 본드는 3가지가 빠져 있더군요. 첫번째, 상대를 약간 거만하게 보며 '본드, 제임스 본드'라고 말하면서 자기를 소개하는 장면 두번째, 바에서 술을 시키며 '마티니 젓지 말고 흔들어서'라고 말하는 장면 세번째, 본드걸과의 러브모드 이안 플레밍이 쓴 원작소설의 제임스 본드 이미지와 다니엘 크레이그가 연기하는 지금의 제임스 본드 이미지가 가장 비슷하다고 하고, 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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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영화 보고 왔는데요.



    뭔가 너무 쉽게 종결되고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긴장감도 그리 많이 들지는 않고요.

    전체적으로 뭔가 음산하긴 하지만, 카지노 로얄에 비해선.....ㅡㅡ;



    본드는 뒤끝이 있던 사람이더군요...ㅎㅎㅎ



    그리고 드디어 건배럴신이 나온다는 것에 반가웠습니다.^^ (스포일러) 아주 멋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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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이윤철 - 2008/11/10 04:14
    두번 봤습니다.

    다시 보니 전체적인 구성이 나쁘진 않아보이더군요.



    하지만, 역시 마무리는 좀 잘라먹은 티가 많이 나보입니다.

    (특히 그린과의 듀얼은 차라리 없는 것만 못해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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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많은 사람들이 그린이 노리는 천연자원이 맥거핀이라고 하던 데, 저는 퀀텀 자체가 맥거핀으로 보입니다.

    그린이 악당답지 않게 연약해서, 심복부하라도 그럴듯 해야하는 데 게이처럼 비리비리해서 실망했습니다.

    크레이그가 본드가 되면서부터, 덴치의 M이 진가를 발휘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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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marlowe - 2008/11/10 09:15
    심복부하(?)를 버릴 때 이미 악당은 악당이 아니더라능.

    글고, 갠적으로 화이트가 진짜 두목이 아닐까 합니다.



    참, 전 이번 작품에선 M이 영 실망이었습니다.

    힘이 없는 모습이 너무 티가 나더군요.

    재떨이를 던질 때 던지는 건지 떨어뜨리는 건지 구분도 안 되더라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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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퀀텀은 3부작으로 제작되는 것이 맞는 건가요? <카지노 로얄>을 본 후 007 시리즈에 다시 관심과 흥미가 불타오르기 시작했는데 이번 <퀀텀 오브 솔러스>는 영 아니네요. 전작과 속편이 내용은 이어지는데 어찌 이렇게 다를 수가 있는 것인지.. T.T



    BLUEnLIVE님의 리뷰는 잘 읽고 갑니다. 역시 007 전문가이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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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trackback from: 007 퀀텀 오브 솔러스 (Quantum of Solace)
    1980년대 어느 날 아버지께서 저를 데리고 동네에 있는 동시 상영관(1)으로 영화를 보러 가셨습니다. 비록 개봉관은 아니였지만&nbsp;모처럼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는 기대감과 함께&nbsp;내심 &lt;람보 2&gt;를 볼 수 있다는&nbsp;생각에 흥분이 되더군요. 그 날&nbsp;관람한 또 다른&nbsp;한 작품도 무척 재미있게 봤었던 기억이 떠오르는데,&nbsp;제목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로저 무어가 제임스 본드로 출연한 007 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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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배트맨 - 2008/11/11 16:08
    3부작이 아니면 실망할 것 같습니다.

    3부작 맞을 겁니다.

    맞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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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BLUEnLIVE - 2008/11/11 19:57
    007과 한방을 같이 사용하시는 BLUEnLIVE님께서도 확답을 못하시는 것을 보면 제가 영화를 틀리게 본 것은 아닌가보군요. ^^



    영화에서는 <퀀텀 오브 솔러스>가 <카지노 로얄>의 속편으로 내용이 이어지던데, 차기작은 또 <퀀텀 오브 솔러스>의 속편이 되어서 트릴로지 구성이 되는 건지 명확하지가 않아서요.



    이번 작품은 여러모로 애매모호한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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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안녕하세요 윤중원입니다. 건강하신지요? ^^ 007 영화가 오랜만에 나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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