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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23일 토요일

거대한 파나마 운하의 장관. 그러나 우리는…

파나마 운하 사진을 필름 째로 분실하는 바람에 이 글에는 제가 찍은 사진이 없습니다. ㅠ.ㅠ


요즘 한반도 대또랑에 대해서 워낙에 부정적인 여론이 많아서 2Mb 진영에서는 사람들이 잊을 때까지는 일단 닥치고 버로우 모드로 돌입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대또랑 전도사 여러분들이 한참 전도활동에 목숨을 걸 때의 얘기들을 들어보면 대략 이런 시나리오더군요.

서울-부산 간 물류를 위해 운하를 파야한다
  → (반박) 돌아가도 문제 없다

물류가 아니라 관광을 위해서 꼭 필요하다
  → (반박) 너무 느리다

깊이만 파면 속도는 나온다
  → (반박) 깊이 파면 (특히 식수원의) 환경이 파괴된다

프로펠러가 돌면 물은 정화되고, 식수는 간접취수하면 된다
  → (반박) 선풍기 돌리면 공기 정화되나? 정화된다는데 간접취수 왜하나?

제가 궁금했던 것은, 우리나라에서 상선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많고 이 중에는 파나마 운하를 지나가본 분들이 많을텐데 그 분들이 여기에 대한 말씀을 왜 아무도 안 하시는가 였습니다. 파나마 운하를 지나가본 분들이라면 저런 주장 자체가 도저히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는 것을 쉽게 얘기할 수 있을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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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아래는 거대한 남미대륙이…

파나마 운하는 북미대륙과 남미대륙이 맞닿아 있는 파나마에 있으며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들어올 때 남미대륙을 한 바퀴 돌 것을 깔끔하게 한 칼에 올 수 있게 해주는 유용한 운하입니다.

또한, 이 운하는 갑문식 운하로서 현재 2Mb 진영에서 산에 운하를 파기 위한 기술적인 방안으로 제시하는 바로 그 "갑문식" 운하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물론 독일 킬 운하갑문식 운하입니다)

그런데, 막상 배를 타고 가서 보면 인터넷에서 사진을 뒤지는 것 보다도 볼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갑문식 운하는 그 특성상 수에즈 운하처럼 탁 트인 곳을 여유롭게 지나다니면서, 옆에 바나나피루스(짝퉁 파피루스) 팔고 돌아다니는 쪽배를 볼 수 있는 환경이 아닙니다. 정반대로, 지나가도록 지정된 배(은행에서 순서표 뽑듯이 줄 서서 갑니다) 한 척 외에는 지나갈 수 없습니다. 갑문 2개당 최대 1척 정도밖에 못 가는 것이죠.

아래의 그림을 보면 배가 계단을 올라가듯이 조금씩 위로 올라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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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산으로 올라가는 건 말처럼 안 쉽지 말입니다

이렇게 올라가려면 크레인 여러 대가 좌우에서 와이어로 배를 묶어서 천천히 끌고 올라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배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딱 3가지밖에 없습니다.
좌우의 콘트리트 벽, 크레인, 와이어(아주 굵은 쇠줄).


깊이 파기만 하면 속도를 더 내서 빨리갈 수 있다고 주장하던데… 이뭐병
바다나 넓은 강에서 배를 운항하는 것과 좁은 수로(협수로)에서 배를 운항하는 것의 차이는 아우토반에서 운전하는 것과 운전면허 실기시험장에서 S자 코스 지나가는 것만큼의 차이가 있습니다.
(아니, 더 차이가 큽니다. S자 코스에서는 차가 벽에 충돌할 일은 없습니다!)

무슨 운하에서 속도를 내고 난리 부르스입니까? S자 코스 3단 밟고 가면 점수 더 줍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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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하를 관광하러 온 게 아니고, 관광코스에 운하가 있을 뿐…

속도가 안 나오므로 물류의 효율성을 생각하면 돌아가는 것상책인 것입니다.

하루 빨리 옮기면 된다고 지혜로운 말씀을 하시던데, 하루 빨리 옮겨서 바다로 가면이틀은 아낄 수 있습니다.
(더하기, 빼기 못해도 경제대통령 할 수 있습니다만…)

그럼 왜 오른쪽 사진처럼 파나마 운하관광하는 사람이 많냐구요?

쩝… 저 사람들은 파나마 운하를 관광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아니라 중남미를 관광하기 위해 유람선을 탔고, 효율을 위해 파나마 운하를 지나가다 보니 파나마 운하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제주도에 비행기 타고 가면, 제주도 보러 간 거지 제주공항 보러 간 것은 아닌 거죠…)

게다가… 파나마 사람들보고 저 물을 식수로 쓰라고 하면… 아주 뒤집어 질 겁니다.

배 아래에서 스크류가 돌다보면, 스크류 주변의 윤활유, 선저(배 아래)에 있는 페인트, 스크류의 쇳가루, 기타등등이 조금씩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더군다나 우리나라 배의 99.999%는 이러한 환경적인 면에서 완전히 꽝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래서 환경에 좀 민감한 나라들은 (특히, 우리나라의) 배가 들어오면 배 주변에 오일 펜스를 치기도 합니다.

파나마 운하보다 우리의 대또랑 얘기가 더 많이 나온 것 같은데, 위에 적은 4가지 문제를 제대로 반박하면 이렇습니다.

서울-부산 간 물류를 위해 운하를 파야한다
  → (반박) 돌아가는 것이 더 빠르고 안전합니다

물류가 아니라 관광을 위해서 꼭 필요하다
  → (반박) 너무 느립니다. 그리고, 콘크리트 벽을 관광할 생각은 없습니다.

깊이만 파면 속도는 나온다
  → (반박) S 코스에서 3단 밟지 마시죠

프로펠러가 돌면 물은 정화되고, 식수는 간접취수하면 된다
  → (반박) 니 차는 운전하면 공기가 깨끗해지나요? 그 물은 너나 처마시세요.

처음엔 순수하게 운하 얘기만 하려고 생각했는데, 옆으로 조금 샜네요.

어쨌든, 갑갑한 것은 필요에 따라서 운하를 파자는 것이 아니라,
운하를 파기로 해놓고서 그 필요성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각설하고, 파나마 운하는 거대 규모의 자본과 기술이 투입된 현대 기술의 총아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두 대양을 짧게 연결한다는 기본 필요성에 충실한 운하입니다.

그렇게나 거대한 장관을 지나갔지만 의외로 본 것은 콘크리트, 크레인 그리고, 와이어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관광을 목적으로 만들어지지도 않았습니다.)

중남미를 갈 기회가 생기는 분들은 꼭 한번 배를 타고 지나가보시기를 권유합니다.


덧1. 운하 정상은 Gutan lake라는 거대 호수입니다.
      올라갈 때 갑문을 완전히 빠져나와 호수로 진입하면 갑문 쪽에 진행방향을 표시하는 커다란 화살표가 보입니다.
      이 화살표의 사진을 찍어놨는데, 필름 째로 분실해서 ㅠ.ㅠ

덧2. 포항 사시는 분들은 2Mb 당선되자 포항 발전을 기대하고 있는데, 대또랑 파면 포항은 고립될 것 같습니다.
      흠좀무




2008년 2월 22일 금요일

1995년… 배 타고 세계일주


1995년에 약 5개월를 타고 세계일주를 하는 행운을 누렸습니다.

이 기간에 수에즈 운하파나마 운하를 통과하며 인간이 만든 거대 건축물의 규모도 느껴봤고,
디즈니랜드유니버셜 스튜디오에서 시간을 보내며 정말 잘 만든 놀이공원의 즐거움도 느껴봤습니다.

하지만,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세상에는 앞선 문화란 없다. 단지, 서로 다른 문화가 있을 뿐이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아시아 처음으로 밟아본 외국 : 태국
자국의 글자가 없는 나라 인도네시아

 유럽 수에즈 운하와 다르다넬스 해협을 배를 타고 지나가봤는데…
평생 소원 성취 : 로마 콜로세움 관광

 아프리카 카사블랑카에는 릭의 카페가 없더라

 아메리카 거대한 파나마 운하의 장관. 그러나 우리는…





2008년 2월 10일 일요일

카사블랑카에는 릭의 카페가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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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카사블랑카는 이제는 고전을 넘어 하나의 컬트가 된 작품입니다.

영화 카사블랑카에 대해서 알게된 것은 버티 히긴스의 노래 "카사블랑카"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노래 카사블랑카는 영화 카사블랑카의 주제곡이 아닙니다.
영화 카사블랑카를 보면서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이 가사의 주 내용입니다.

처음 이 영화를 촬영할 때는 일사(잉그리드 버그만 분)가 릭(험프리 보가트 분)과의 해피엔딩인지, 라즐로와의 해피엔딩인지에 대해서 결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영화를 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현대식 용어로 쪽대본의 난무였죠.

그러다보니 일사의 캐릭터가 양쪽 모두에게 애틋한 연기를 보여줄 수 밖에 없었고, 이 점이 영화의 분위기를 묘하게 만드는데 한 몫을 했습니다.

어쨌거나, 얼마나 멋있습니까… 한 남자의 쓸쓸한 고독과 사랑이 있는 곳…

(다른 글에서도 적었지만) 이 영화에서 "Play it again, Sam"이라는 대사는 나오지 않습니다.
이 영화의 팬이기도 했던 우디 앨런의 영화 Play It Again, Sam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저 대사를 릭이 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사실, 릭은 연주하지 말라고만 했고, 일사가 비슷한 대사를 했습니다. "Play it, Sam… Play As Time Goes By…"






하지만… 버뜨… 그러나… 현실은 언제나 비정한 것!
그런 로맨틱한 카사블랑카는 없습니다. 그런 공간은 존재한 적이 없었습니다. 단지,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만들어진 우리들의 기억이 존재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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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사원 : 하산 2세 사원

카사블랑카 땅을 밟았을 때 우리의 코를 자극하는 것은 이제는 거의 지워진 희미한 화약 냄새가 아니라 생생하게 느껴지는 강한 생선 비린내였습니다.
카사블랑카는 생선 비린내가 진동하는 (수도 대우) 어촌일 뿐이었습니다. 그 실망감… 말로 다 할 수 있겠습니까? 츄르륵…

하지만, 좋은 점도 많습니다. 우선, 이슬람 국가를 한 번 보고 싶으면 굳이 사우디까지 가서 고생하는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독실한 편입니다. 오죽하면… 오른쪽에 보이는 저 사원… 정상에서는 밤이 되면 사우디 방향으로 한 줄기 빛이 나갑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그 빛은 사우디(정확히는 메카)에서 오는 빛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이죠. 네, 이슬람교 신자들 99.99%는 이렇게 독실하고 착합니다.

하지만, 카사블랑카는 그것이 끝이었습니다. 휴- 그 실망감은 말로 다 할 수 없더군요. 한 교포분의 말대로 카사블랑카는 영화로만 유명할 뿐이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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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릭의 카페… 냐구요?


카사블랑카에 관한 책이나 글을 보면 영화 분위기와 똑같은 바가 있고 이름도 릭의 카페라고 많이들 적혀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돌아다녔을 때는 릭의 카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얏트 호텔(Hyatt Regency)의 바를 릭의 카페와 비슷하게 꾸며놓았을 뿐이었습니다.

바로 왼쪽에서 보시는 바입니다.

저 바에서는 영화 Casablanca의 비디오 테이프도 팔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NTSC와 PAL 방식을 모두 팔고 있었습니다. 중립구역답긴 하네요)
즉, 이곳은 영화가 개봉된지 반백년도 넘은 영화덕분에 아직도 영화특수(?)를 누리고 있던 것이죠. (이 영화는 1942년 영화입니다!)




2008년 2월 5일 화요일

평생 소원 성취 : 로마 콜로세움 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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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세움 홍보 비디오

이제 이소룡(Bruce Lee)이 사망한지 35년이 지났네요.
(1973년 7월 20일 사망)

중3 졸업하고 나서 고등학교 가기 전의 (그야말로 놀고 먹는) 시간에 친구네 집에서 이소룡 영화를 몽땅 다 봤었습니다.
(그 친구는 지금 몇년 전 고인이 되었습니다. R.I.P)

그 때 5편의 영화 중에서도 머리 속에 콱 박힌 영화가 바로 [맹룡과강(The Way of the Dragon)]이었습니다.

액션이면 액션, 코미디면 코미디, 게다가 멋진 콜로세움의 광경까지… 이 영화는 저에게는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그리고, 콜로세움에 가보는 것은 저에게 평생 소원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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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에서 처음으로 눈에 띤 것은 배를 부두에 계류할 때(붙일 때) 우리나라와는 다른 방식으로 계류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부분의 나라들은 배의 옆면을 부두에 붙입니다. 하지만, 이탈리아에서는 부두가 충분하지 않아 오른쪽 그림과 같이 배의 꽁무니를 부두에 붙입니다. (이 방식을 지중해식 계류라고 부릅니다)

유치찬란 잠수함 영화인 [잠망경을 올려라(Down  Periscope)]에서 미국 군함이 이 방식으로 계류하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커다란 항공모함 Enterprise가 지중해식 계류를 한다니,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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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sh! Push!

그 유명한 피사의 사탑이 있는 피사를 갔는데, 피사는 사실, 사탑 외에는 그다지 볼 것은 없었습니다.

게다가 1990년부터 피사의 사탑 복원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피사의 사탑은 그냥 구경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책으로 보는 것과 뭐가 다르겠습니까…)
※ 이 공사는 결국 2001년에 되어서야 끝났습니다.



피사 다음으로 간 곳이 로마였는데, 로마에서도 제일 먼저 콜로세움을 찾아갔습니다.
네, 콜로세움요. 바로 그 콜로세움에 드디어 온 것입니다. 중3 때 비디오로 보고 동경만 했던 그 콜로세움에요.

콜로세움은 1층은 자유롭게 다닐 수 있고, 2층은 유료관광이었습니다. 가격은 당시에 2,000페소였는데, 당시 시세가 1원≒1페소 였으니까 부담스러운 가격은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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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세움을 보면서 우리나라 문화재에 대한 안타까움이 많이 느껴졌습니다.

사실, 콜로세움, 별거 아닙니다. 돌로 만든 원형 경기장일 뿐입니다. 상당 기간은 로마인들의 잔인함을 충족시키기 위해 사용되었고 말이죠.
하지만, 우리나라의 문화재들… 얼마나 짱짱한 것들 많습니까. 팔만대장경, 석굴암… 일제 강점기 이전만 해도 이 문화재들이 완벽한 수준으로 유지되어오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지금은요? 문화재는 그 자체에 대한 가치만큼이나 그것을 지키고 보전하는 과정도 중요합니다.

한낱 돌덩어리 경기장의 흔적도 세계적인 문화재로서 커다란 관광수입을 올리는데, 석굴암같은 완벽에 가까운 조형물은 갖은 피해만 입고, 망가진 상태로 유리벽 속에 놓여있습니다.
이 무슨 어이 없는 꼴입니까… 우리 스스로가 반성해야 합니다.




콜로세움 다음으로 간 곳은 바티칸 시티에 있는 성 베드로 대성당이었습니다.
바티칸으로 이동하면서 눈에 확 띄는 로마의 풍경이… 모든 건물들이 전통적인 로마 모습 그대로라는 것입니다.
로마 시내는 법적으로 다른 형태의 건축물을 지을 수 없게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박통… 자네 초가집 다 날려먹고 슬레이트 지붕 얹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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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베드로 성당은 전체가 웅장하게 만들어진 것이 어찌 저런 것을 만들었을까하는 경탄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왼쪽 사진에 보이는 것이 성당 앞 광장에서 본 성당의 윗쪽입니다. 예수와 12제자들의 조각이 보이죠? 아마 희대의 배신자 가롯 유다도 저기 있을 겁니다.

성당의 구조물 중에는 대단한 것이 한둘이 아니었는데, 그 중 하나는 기둥들입니다. 오른쪽 사진에서 둥글게 배치된 기둥이 보입니다. 그런데, 저 기둥 하나가 한 개가 아닙니다. 뒤에 똑같은 각도에 똑같은 간격을 두고 여러개가 있습니다. 한 점을 중심으로 동심원을 그리고 있는 것이죠. 그 중심에서 사진을 찍은 것이구요.
(중심은 바닥에 표시되어 있습니다)

제가 로마를 관광한 날짜는 1995년 9월 23일이었는데, 제 평생 잊지 못할 날 중의 하나입니다.

The Rome was not built in a day!



2008년 2월 3일 일요일

수에즈 운하와 다르다넬스 해협을 배를 타고 지나가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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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반도 대또랑 때문에 국민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가장 큰 걱정은 대또랑은 만들어야 할 이유가 없다는 점과, 만들고 난 뒤 후폭풍(환경문제 등등)에 대한 방안이 전무하다는 것입니다.



배를 타고 홍해→지중해→흑해를 지나가면서 수에즈운하를 통과했습니다.

(홍해의 동쪽이 인도양입니다)
인도양에서 흑해로 가는데 아프리카 대륙을 돌아서 가면 엄청난 시간과 기름이 낭비되는데, 수에즈운하를 통과함으로써 여러모로 효율적인 항해가 가능한 것입니다.

하지만, 수에즈 운하는 프랑스에서 이집트인의 노동력을 엄청나게 착취해서 만든 작품입니다.(물론 목숨도…)

프랑스인들의 잔인성은 식민지 지배 방식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프랑스는 식민지 지배를 쉽게 하기 위해 마약을 이용했습니다. 마약은 사용할 때 뿐만 아니라 그 다음 세대까지 무력화하는 것을 이용한 것이죠.
이런 국민들이 개고기 먹지 말라고 떠들어대는 것 보면 배알이 꼴리는 것이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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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는 사막만 구경했을 뿐…

수에즈 운하는 잡상인들의 천국이었습니다.
이집트에서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는 배 쪽으로 조그마한 배 한 척 타고 와서 여러 가지 물건을 팝니다. 물론 대표적인 것은 파피루스에 그려진 그림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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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의 한가위 보름달

이집트는 한 번 꼭 가보고 싶은 나라였습니다만, 그렇다고 배에서 뛰어내려서 갈 수는 없는 노릇이라, 그냥 구경만 하고 넘어갔더랍니다.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던 날이 9월 9일이었습니다. 이 날이 추석이었죠.
한가위 보름달을 지중해에서 보는 기분이 상당히 착잡했더랍니다.
'아~ 우리나라에선 지금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 홍해의 바닷물 색깔이 붉은 색이라고들 하던데, 막상 직접 보니 맑은 푸른빛이었습니다.
(왜 색깔 있는 바다에 이름을 등록했는지는 모르겠더군요. 황해의 누런색을 연상하면 안됩니다)
깨끗한 그리고, 바닷속이 투명하게 비쳐보이는 푸른빛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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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를 지나서 흑해로 들어갔습니다.
지중해와 흑해가 연결되는 곳을 보면 해협이 2개 있습니다.
저 위의 지도보다는 오른쪽 지도가 더 보기 쉽습니다.
아래쪽에 있는 것이 다르다넬스 해협이고, 위쪽에 있는 것이 보스포러스 해협입니다.
(위의 사진에서는 공간 부족으로 다르다넬스만 적었습니다…)

다르다넬스 해협을 아시나요?
다르다넬스는 해협은 모르시더라도 이카루스의 전설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이카루스는 아버지 다이달루스와 함께 새털을 밀랍으로 붙여 날아갔는데, 하늘에 너무 가까이 가서 떨어지고 어쩌고 저쩌고… 하는 그 신화에서, 이카루스의 아버지가 다이달루스입니다.
이 해협의 이름은 그 다이달루스에서 왔습니다.
한편, 이카루스가 추락사한 곳은 그 곳은 좀더 아래에 있는 Icaria 섬 근해입니다.

이 두 해협을 포함한 해협 좌우의 땅은 모두 터키의 영토와 영해입니다.
(터키는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국가입니다. 머찌당~)

터키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본 유럽의 국가였는데, 보이는 건물들이 전부 아래 사진과 같았습니다.
(때는 1995년. 아날로그 카메라밖에 없던 시절이었는데, 필름이 모자라서 더 못 찍었습니다)

해협 전체가 이 분위기입니다


처음 보는 유럽 즉, 터키의 고풍스러운 건물들의 광경은 충격이었습니다.
성마다 왕자-공주 커플이 한 커플씩 살고 있을 것 같은 광경 뿐이었죠.

이러한 광경을 뒤로 하고 두 개의 해협을 지나서 흑해로 들어갔습니다.

황해는 누런색, 홍해는 푸른 색입니다. 그렇다면 흑해는 무슨 색일까요?

이것도 문제란답시고 답열기..


한참을 쳐다보고 있는데 문득 빠져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들어서 화들짝 놀랐습니다.
나중에 들어 보니 그런 충동 때문에 빠져죽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고 합니다. (휴~ 죽을 뻔 했네)

이렇게 약 6일간의 홍해-수에즈운하-지중해-다르다넬스/보스포러스 해협-흑해의 항해가 끝났습니다.



자국의 글자가 없는 나라 인도네시아

인도네시아에는 8월 16일부터 8월 20일까지 5일간 있었습니다.
인도네시아는 우리나라와 커다란 공통점과 더 큰 차이점이 있습니다.

공통점 :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2차대전기간 일본의 식민지였다 (독립기념일은 8월 17일)

차이점 : 자기나라 글자가 없어 영어 알파벳으로 문자를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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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념 퍼레이드 중인 인니 여고딩들

인도네시아는 자국의 글자가 없습니다.
대신 영어 알파벳을 이용해서 발음나는 대로 문자를 기록 합니다.
블록 엠이라는 청소년들이 많이 가는 구역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Blok M이라고 표기하더군요.
(물론, 블록은 영어 block에서 온 단어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광복절이 되면 나라를 말아드신 분들 중 재력이 빠방한 분들을 중심으로 사면을 하는데 비해 인도네시아에서는 퍼레이드를 한다는 점도 달라보였습니다.

왠지… 우리가 얼마나 어렵게 되찾은 우리나라의 주권과 우리 글자인지를 우리 스스로가 모르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하루는 돌아다니던 중 웬 인도네시아 사람이 와서 말을 걸었습니다.
"아나따와 니혼진데스까?"
(당신은 일본인이십니까?)
사실, 이 때 돌아다니던 기간이 4개월 정도 되었는데, 어떤 나라에서 가서도 "Are you from Korea?"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심지어는 "Are you from Iran?"이라는 말을 들을 동료도 있었는데 말이죠!!!)

외국에 나가면 애국자가 된다고 합니다. 정말입니다. "Are you from Korea?"라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는 것은 정말 큰 상처가 되었습니다.

덧. 인도네시아를 돌아다니면서 정말 다행스러운 것을 "쌀"이었습니다. 태국과 같은 알량미일까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보통 쌀이더군요. 휴~



2008년 2월 2일 토요일

처음으로 밟아본 외국 : 태국

지금이 2008년이니까 배 타고 지구를 한 바퀴 돈 것도 무려 13년이나 지났습니다.
(정확히는 1995년 후반기였으니까 12년 몇 개월이군요…)

여행기록을 상세하게 적어두기는 했는데, 하나하나 적어 올리는 것은 제 블로그에 맞는 스타일은 아닌 것 같아서 컴팩트(compact)하고 콘사이스(concise)하게 정리해서 올리겠습니다.
(대통령 인수위 여러분… 이 영단어 발음 커뤡트(correct) 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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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서 처음 본 외국배는 북한배(인공기 보이죠?)

제가 처음 가본 외국 국가는 태국이었습니다.
배를 타고 차오프라야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데, 외국배가 처음으로 보였습니다.
"이야, 외국배다!" 하는데, 북한 상선이더군요. (노란 연돌에 인공기 보이죠?)

배에는 조수기라는 장치가 있습니다. 바닷물을 끌어들여 역삼투압 방식으로 증류수를 뽑아내는 장치입니다. (초대형 정수기 쯤 됩니다)
이렇게 조수한 물을 가지고 밥도 해먹고, 빨래도 하고, 샤워도 하는 것이죠.

차오프라야 강은 "왕들의 강"이라는 뜻입니다.
상류에서 황토물이 대거 유입되었기 때문에 물 색깔이 엄청나게 탁한데, 실제로 물고기가 살기에는 훨씬 적합하다고 합니다.

태국 사람들은 이 물에 빨래도 하는데, 흰 옷은 더욱 희게, 색깔 옷은 선명하게 만들어준다고 합니다.
(사실, 이것은 착각일 뿐입니다. 정말 흰 옷은 여기에 빨면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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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농장

태국의 유명한 관광상품 중 하나는 악어농장입니다.
TV에서 악어 쇼 하는 것 보면 정말 멋지고 아름답게(?) 보입니다. 역시 편집의 기술은 대단하죠.
막상 가서 보니 그렇지만은 않았습니다.

실제로 악어는 불쌍하기만 합니다.
쇼 하다가 입에 피도 나고 말이죠. 전투력은 발휘할 수 없습니다. 가끔 전투력을 발휘하는 사태가 발생하면 사고라고 부르고 악어를 죽입니다.

그리고, 악어를 가까이서 보니 사람과 파충류는 그다지 상성관계가 안 좋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마치 드라마 V를 보는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악어가 집단 서식하는 우리 옆을 지나가봤는데, 섬찟하기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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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정말 깨져야할 도그마

이 악어농장 쇼의 팀장이 서말구 님과 정말 닮았습니다.
그 분이 누군지 모르신다구요?
네, 우리나라 100m 기록(10.34초) 보유자이십니다.
1979년에 세운 기록인데, 29년이 지나도록 아직도 기록이 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우리나라 육상의 발전이 없었다는 뜻이죠…)

서말구 님에 대한 좀 더 많은 얘기는 블로그 KILLDOGMA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덧1. 우리가 태국에 대해 생각할 때 단순한 촌나라(?) 정도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태국의 글자는 우리의 한글과 더불어 창제자를 알고 있는 몇 안되는 글 가운데
      하나일 정도로 태국은 문화국가입니다.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빼면서 누군가 그랬습니다.
"전 세계에서 자기나라 글을 만든 날을 공휴일로 하는 나라는 없다"

덧2. 태국 쌀을 보통 알량미라고 부릅니다. 길쭉한 쌀인데, 밥을 하면 냄새가 좀 많이 납니다.
      한인 식당에서 밥을 먹었는데, 밥이 제일 먹기 힘들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