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29일 화요일

ZIP을 만든 비운의 천재 필 캐츠(Phil Katz)

Phillip Walter Katz (November 3, 1962 – April 14, 2000)


ZIP 포맷은 널리 사용되는 표준 압축 형식이다. (alz, egg 따윈 표준 근처에도 못 가고 널리 사용되지도 않는다!)
비록 최신 포맷(rar, 7zip 등)에 비해 압축률도 떨어지고, 다양한 기능이 제공되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표준은 표준인 것이다.

그런데, 이 포맷은 누가 만들었을까?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필 캐츠(Phil Katz)이다. 이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는가?
없다고? 설마? 지금은 잘 쓰지 않는 이름이지만, 한 때 유명했던 PKZip, PKUnZip의 PK가 바로 그 이름의 약어다.





1. 전설의 시작: 1986년

전설의 시작은 198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6년은 PC 통신이 한창 확산되던 시기였다.
느린 전화선을 통해 파일을 안정적이고 빠르게 전송하기 위한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었다.
1986년은 XMODEM, YMODEM 등을 잇는 파일 전송 규약인 ZMODEM이 개발된 해이기도 하다.

이 때 압축의 영역에서 두각을 나타낸 방식이 SEA(System Enhancement Associates)사에서 개발한 ARC였다.

ARC의 소스는 SEA의 BBS에서 구할 수 있었는데, 최적화에 일가견이 있던 PK는 이 소스를 최적화해서 PKXARC라는 ARC 압축해제 프로그램을 만든 뒤에 프리웨어 형태로 공개한다.
PKXARC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다양한 피드백을 받게 되는데, 이에 고무된 PK는 압축이 가능한 PKARC를 개발해 셰어웨어 형태로 공개하고 PKWARE라는 회사를 만들게된다.



2. 법정 다툼: 1988년


PKARC는 다양한 기능이 추가되면서 결국 SEA의 ARC와 호환성이 없어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즉, SEA의 ARC에서 압축한 파일을 PKARC에서 읽지 못하는 수준까지 다다르게된다.
(지금 개념으로 생각하면 호환성도 없는데 굳이 ARC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건 넌센스임)

SEA에서는 PK에서 ARC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소송을 걸게 되고, PK는 ARC라는 이름을 버리고 PAK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로 한다.

그런데, SEA에서 PK가 SEA의 ARC 소스를 무단으로 사용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무단 사용의 범위가 상당히 광범위했는데, 심지어는 주석의 철자오류마저 똑같은 경우도 발견되었다.

SEA에선 다시 PK를 고소하고, PK는 패소하게 되는데, 이 때 네티즌들은 이 사건을 대기업 SEA가 힘없는 개인 개발자 PK를 핍박했다고 받아들여 ARC 불매운동을 벌이고, 결국 SEA는 망하게 된다.
재미있는 건 이 당시 SEA와 PK 모두 직원이 5명 이하인 패밀리 비지니스 수준의 회사였다는 것이다.
즉, SEA는 전혀 대기업이 아니었으며, PK 역시 개인 개발자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3. 왕의 귀환: 1989년


상황이 정리된 후 PK는 PAK라는 압축방식도 버리고 완전히 새로 개발된 ZIP라는 포맷을 발표 및 공개하고, (그 유명한) PKZIP을 셰어웨어 형태로 발표한다.

ZIP 포맷은 공개되면서 다양한 플랫폼에서 표준 압축방식으로 자리잡게 되고, PKWARE는 수백만달러를 벌어들이는 회사로 발돋움한다.

또, (PKWARE의 직원인) 그의 가족들은 그에게 회사의 경영까지 맡긴다.
그는 비지니스 쪽은 개념이 없는 소프트웨어 전문가였음에도 말이다.
(경제대통령을 부르짖지만 알고 보면 대기업을 부도나게한 누군가를 권력자로 뽑아주던 몇년 전이 생각남)



4. 왕의 몰락


1990년대 초에 MS 역시 다른 회사들과 마찬가지로 ZIP 포맷을 받아들이려했으나, PK가 굉장한 반 MS 성향을 보이는 바람에 결국 Windows 3.0/3.1에서는 ZIP 포맷이 도입되지 못하는데, 결국 그의 선택은 대규모 플랫폼 시장 진입을 늦추는 결과를 가져온다.

게다가, 그는 알콜 중독이 있었는데, 1991년 처음 음주와 관련된 문제로 체포되었고, 1년 뒤에는 음주운전으로 기소되었다.
이후 1994년부터 1999년 사이에 운전면허 관련 문제로 무려 4번이나 기소되는 기염(?)을 토한다.



5. 그리고 사망


2000년 4월 14일, 그의 나이 37세때 그는 호텔에서 사망한 상태로 발견된다. 손에는 빈 박하술병을 든 채였다.
검시 보고서에 의하면 사인은 만성 알콜 중독으로 인한 췌장 급성 출혈...

널리 사용되는 표준 압축 포맷을 만든 프로그래머로서는 너무나 허무한 결말이었다.


댓글 32개:

  1. PKXRC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오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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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천재의 "인생은 한방!" 인건가요 크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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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알집 안티로서 이런기사는 만천하에..~-0-

    안정성 및 호환성에서 zip,rar이 정말 최고가아닌가생각이드네요.



    어쨌든 천재는 일찍죽는군요.제가 천재가아니라서다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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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역시 술은 파멸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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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페니웨이님 블로그에서 만날 댓글만 보다가 드디어 놀러왔습니다.

    이름이 자주 보이시는지라 한 번 방문 해봐야지 맘 먹은지는 오랜데... 크

    지금 와서 글 몇 개 읽어보진 않았지만 재미있는 글이 많은 것 같네요.

    자주 놀러 오겠습니다.

    세 시간도 채 안 남은 2009년 마무리 잘 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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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DOS 시절에는 압축률이 높아서 LZH를 선호 했었습니다. 지금은 거의 사라져 버렸지만..... (일본에서는 아직 LZH를 쓰고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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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JAFO - 2009/12/31 18:39
    급수정. 감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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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삽군난무붑샤 - 2009/12/31 18:57
    그러다 한 방에 훅 가셨죠... 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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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SoulStitch - 2009/12/31 19:40
    공개된지 몇십년이나 된 zip을 아직도 제대로 지원하지 못하는 알집이야 말로 진정한 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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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guybrush - 2009/12/31 20:33
    술 자체가 파멸로 가는 지름길일 수는 없겠죠. 도를 넘으니 문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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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terminee - 2009/12/31 21:22
    잘 오셨습니다. 새해에는 좋은 일들만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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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블랙 - 2009/12/31 22:45
    LZH도 훌륭한 포맷이죠. 오랜만에 들으니 반가운 이름이네요.

    그런데, 아직도 쓰고 있다는 건 윈도우 용도 있다는 말씀인가요? 대단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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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오랜만에 보는 이름들이 많네요. pkzip이니 zmodem이니ㅎㅎ atdt01410 헉-_-

    그러고 보니 윈도우로 넘어가는 시점에 몰락한 압축 형식이 또 있네요. Ultra Compressor라고...

    도스 막바지에 등장하여 큰 기대를 모았으나 전성기를 누리기도 전에 윈도우 시대가 와버렸다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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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okto - 2010/01/01 14:27
    UC2는 쓸까말까 고민하던 중 갑자기 없어졌던 안습의 기억이...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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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전 천재가 되지 말고 영상쪽 블루오션 개척으로 돈 많이 벌어서 안전하게 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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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천용희 - 2010/01/01 18:00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참, 신년 맞이(?) 드릴게 하나 있는데... 언제 한번 뵙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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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ARC는 안써봤고 ARJ와는 연관이 있나요?

    아무튼 PKZIP과 PAK은 써봤는데 말이죠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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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zockr - 2010/01/01 18:25
    무려 뭘 주실지 기대되네요...



    시간 언제 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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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구차니 - 2010/01/01 22:23
    ARJ는 다른 방식들과는 아무 관련 없는 별개의 제품입니다.

    재미있는 건 이 회사에선 JAR이란 새로운 방식도 만들었는데, 이게 자바의 JAR과도 아무런 관련이 없는 새로운 포맷이란 겁니다. (헷갈려요)



    그런데, PAK를 써보셨다구요? 용자십니다. 처음 이 전쟁 시기에 ARC, PAK도 써보긴 했는데, 이런 내막을 몰라 걍 지웠던 알흠다운 기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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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zockr - 2010/01/02 09:19
    음.. 기억이 잘못되었을수도 있지만,

    PAK가 압축시에 progress 띄우던 녀석아닌가요? ㅎ

    filename [##### ] 33% 이런식으로요

    참 신기해서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데 말이죠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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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구차니 - 2010/01/01 22:23
    20여년 전이라 전혀 기억이...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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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zockr - 2010/01/02 11:35
    메일로 선물 보내 드렸습니다 ㅋㅋㅋ

    바이러스 검사는 필수일지두요 ^^;





    음.. 한번 해보니 기억이 꼬였는지 progress는 나오지 않네요 ㅠ.ㅠ PAK 이었던것 같은데.. 옵션을 안줘서 그럴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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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구차니 - 2010/01/01 22:23
    혹시 회사 메일로 보내주신 거냐능...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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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ZIP 포맷이 만들어진지 20년밖에 안 됐군요.

    사원수만 [b]200명[/b]이 조금 넘는 소규모의 [b]주식회사[/b] 이스트소프트에게 [b]20년[/b](회사 설립시기의 관점이 있으니 실제로는 [b]17년[/b])이라는 단기간에 해당 포맷을 완벽히 지원하는 압축 프로그램을 만들라는 것은 순전히 유저 입장에서의 허황된 욕심인지도 모릅니다.

    [b]양병규님 혼자[/b]서 무려 [b]몇 달[/b]이라는 장기간(근데 이건 사실이네요.)동안 고생하셔야지 겨우 나올 수 있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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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trackback from: '오버클럭' 권장은 하지만, A/S는 어려운 현실
    '오버클럭에 최적화돼 있습니다, 하지만 A/S는 안됩니다'? "저희 메인보드야 말로 오버클럭에 최적화돼 있습니다. 극한의 오버클럭킹에도 안정성이 보장됩니다" "그럼 오버클럭킹을 하다 망가지면 A/S에 문제는 없는 건가요?" "아니요. 오버클럭으로 인한 제품 손상은 고객님의 책임이므로 A/S는 어렵습니다" "그럼 왜 오버클럭으로 그렇게 광고를 하시나요?" "적정 수준의 오버클럭까지는 큰 무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극한의 오버클럭시 발생하는 제품 손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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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 @zockr - 2010/01/02 11:51
    한메일 -> hzoc.kr로 보냈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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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 헐...너무나 대중적이고 표준적인 포맷인 zip을 만든 사람이 저렇게 허망하게 죽다니...참 안타깝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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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 글 읽다 보니 생각나는 게 있어서 몇 자 적습니다.

    어차피 저 시절 압축 툴은... 전부 LZW 알고리듬을 썼습니다. 위에 소개된 ZIP부터 LZH, ARJ 등도 모두 LZW 알고리듬을 변형해서 썼죠. 요즘 압축 툴이 모두 LZMA 또는 PPMA 등의 압축 알고리듬 + 솔리드 방식을 쓰는 것과 비슷하죠. 그럼에도 전부 포맷이 확실히 다릅니다.

    그에 비해 알집의 alz는 bzip2 짝퉁일 뿐입니다. 비슷한 게 아니라 포맷 자체가 같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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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 @koc/SALM - 2010/01/04 18:26
    알집이야 뭐 진정한 압축계에서의 막장의 제왕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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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 @Q P - 2010/01/02 15:07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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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 @애쉬™ - 2010/01/04 17:37
    정말 허망하죠... 라이센스 관련 비용만으로 편하게 먹고살 수 있는 사람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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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 흠..살아잇을때는 빛나지만

    막상..죽고나니 허망하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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