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7월 2일 수요일

007 살인면허: 실패로 끝난 "소설로의 회귀"의 아쉬움

제가 [위기일발]에 이어 두번째로 좋아하는 007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흥행실패는 (EON 프로덕션에게는 물론) 저에게도 큰 충격이었습니다.
 
이 영화가 왜 흥행에 실패했는지는 시간이 훨씬 지난 다음에야 알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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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소설에 기반을 둔 (거의) 마지막 작품

[카지노 로얄]은 워낙 특이한 경우라 제외하고 보면 [살인면허]는 소설에 소재를 둔 007 영화 중 거의 마지막 작품입니다.

필릭스 라이터가 상어에게 공격당하는 부분은 소설 <죽느냐사느냐>의 한 장면으로, 본드의 눈이 뒤집어져 복수를 감행하는 계기가 됩니다.
하지만, 영화 [죽느냐사느냐]는 이 부분이 빠져있어 힘이 쭉 빠져버렸는데, 이 내용이 드디어 [살인면허]에서 나옵니다.


1. 영화 [살인면허]의 장점

a. 특장점: 원작 캐릭터와 분위기로의 완전한 회귀

[여왕폐하의 007]. [유어아이즈온리]에서도 있었던 원작으로의 회귀를 시도한 작품입니다.
소설 전체에서 가장 거친 장면을 도입부에 사용하였는데, 이는 티모시 달튼의 거친 이미지와 딱 맞아떨어졌습니다.

특히, 필릭스와 배신자 킬리퍼가 상어에게 물리는 장면에서 물리는 광경을 바라보는 등장인물들의 눈빛을 보면 달튼의 본드는 악당쪽에 훨씬 가까우며 비정하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b. 소설에서 가져온 설정을 적절히 사용

앞에 적었듯이, 필릭스 라이터는 상어에게 물리게 됩니다. (영화 [죽느냐 사느냐]와 같은 배우가 필릭스 라이터 역을 맡습니다)
이것만으로는 다소 부족했는지, 샤키(Sharky)도 살해당합니다. (샤키는 사실, 소설에서의 쿼럴과 동일인물이라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제임스 본드는 임무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복수에 올인하게 됩니다.


c. 달튼의 거친 이미지에 딱 맞는 맞춤형 대본

달튼의 이미지는 상당히 거칩니다. 전작인 [리빙데이라이트]는 이 거친 이미지를 잘 살리지 못했지만, [살인면허]에서는 거친 느낌이 제대로 살아납니다.

일부 장면들은 R등급을 받지 않고 PG-13등급을 받기 위해 삭제되었는데, 이 장면들은 결국 Ultimate Edition DVD에 수록되어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삭제된 장면들 보기 (다소 잔인합니다)…


d. 베테랑 대본작가의 마지막 작품

제임스 본드라는 캐릭터를 만든 사람이 3명 있습니다.
첫째는 원작자인 이언 플레밍이며, 둘째는 [살인번호], [위기일발], [썬더볼]을 감독한 테렌스 영이고, 마지막은 대본작가 리차드 메이바움입니다.

메이바움은 대부분의 007 영화의 대본을 쓴 007 전문 대본작가인데, 결국 [살인면허] 개봉 2년 뒤인 1991년에 82세로 타계했습니다. (R.I.P)

소설 <죽느냐 사느냐>는 <카지노 로얄>에 이은 두번째 007 소설로, 전작에서의 유약함을 제거하기 위해 복수를 주제로 사용했습니다. 복수는 소설에서는 종종 사용되었지만, 소설에서는 거의 묻혀버렸다가 [살인면허]에 와서야 등장합니다. 하지만, 결국 (소설이 아닌) 007 영화의 팬들에게는 오히려 전작들과의 괴리감만 느껴지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부분

a. 2% 부족한 액션

전체적인 거칠기는 최강입니다. 적어도 [카지노 로얄]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007 영화 중에서 거칠기라면 따를 작품이 없었습니다. (대본이 원래 007 영화의 대본이 아니었다는 루머가 돌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티모시 달튼은 원래 액션 배우가 아닌데다가 별도로 액션을 연마하지 않아 액션이 2% 부족합니다.
(당시의 헐리우드 영화의 액션은 고만고만했으며, 리얼리티 액션이라는 흐름은 무려 16년이나 에야 나타납니다)


b. 불필요했던 Q의 등장

Q가 본드의 액션에 끼어든 것은 2번입니다. [옥토퍼시]와 [살인면허]인데, [옥토퍼시]에서도 Q의 등장은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었지만, 인디아나 존스를 패러디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다는 쪽으로 이해가 되긴 했습니다.

하지만, [살인면허]에서는 정말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이 영화는 리얼한 제임스 본드를 묘사하는 영화인데, 이 리얼리티를 떨어뜨리는 Q와 특수장비들이 대거 등장합니다. 오히려 Q는 나와서 "Without Q branch, you'd been dead long ago. (Q 부서가 없었으면 자넨 예전에 죽었네)"라는 얘기를 하고, 현장에서 본드를 도와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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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부서에서 빗자루 무전기도 만들까요? (하긴, [리빙데이라이트]에선 갈퀴 금속탐지기도 있었으니…)


물론, Q가 제공해주는 장비는 비현실적인 판타지 장비가 아니라 지문감지기가 달린 총이나, 담배 케이스에 넣은 폭탄 등 현실적인 장비들이기는 하지만, [카지노 로얄]에서 보여줬듯이, Q 없이 살아남는 본드를 보여주는 것이 훨씬 더 현실적인 본드를 잘 묘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c. 전작과는 너무나 다른 이미지

전작 [리빙데이라이트]는 사실 달튼을 위해 집필된 대본이 아닙니다.
로저 무어 경과 피어스 브로스넌만을 대상으로 고려하여 집필되었기 때문에 달튼의 이미지를 충분히 살리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살인면허]에서 그의 이미지를 잘 살리자 전작과 비교가 되어버렸습니다.
결국 그의 전작이 발목을 잡아 흥행에 실패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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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본드도 다치고 피나는 사람이란 것을 확실하게 보여준 장면



3. 게다가 겹친 악재

냉전의 시대에 태어난 제임스 본드에게 1989년은 위기가 시작된 해입니다.
바로 동독과 서독이 "독일"통일된 해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2년 뒤인 1991년소련붕괴됨으로써 냉전의 시대는 끝이나고, 인류는 영원한 발전을 향해 달려…
(STOP!)

이는 제임스 본드에게 심각한 정체성의 위기를 가져오게 되고, 흥행이 실패하는데 한 몫을 하게 됩니다.


4.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

  1. 흥행에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감독인 존 글렌은 자신이 감독한 007 영화 중 최고로 꼽음.
    (상당수의 리얼리티 본드를 선호하는 팬들도 이에 동의함)

  2. 1990년 8월 [살인면허]가 미국 흥행에 실패하자, 감독인 존 글렌과 대본 작가인 리차드 메이바움이 EON 프로덕션을 떠났는데, 이를 두고 무혈 쿠데타(bloodless coup)이라고 불렀음

  3. 위의 2명 외에도 본드 시리즈와 결별한 주요 인물은 티모시 달튼(제임스 본드), 로버트 브라운(M), 캐롤라인 블리스(머니페니) 그리고, 타이틀 디자이너 모리스 바인더 등이 있음

  4. 본드의 손목을 묶은 줄이 코카인 분쇄기에 걸리자 다리오(베네치오 델 토로 분)가 이를 자르는 장면이 있는데, 실수로 티모시 달튼의 손에 상처를 입혀 촬영이 중단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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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 줄만 잘라! 손 말고!


  5. 영화 제목을 표기하는 과정에서 영국식으로 licence로 할 것인가, 미국식으로 license로 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있었는데, 영국식으로 하기로 결정함

  6. 본드가 M을 배신하는 장면은 영국에서는 라틴 아메리카의 마약 밀매에 대해 공식적으로 손을 댈 수 없다는 입장도 고려되었음

  7. 본드가 사직서를 제출하는 장면은 헤밍웨이의 생가에서 촬영되었음. 이 때 본드의 대사인 "I guess this is a farewell to arms,"는 물론 헤밍웨이의 작품 무기여 잘있거라를 의미하는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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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8개:

  1. 크흐.... 이 한편으로 티모시 달튼은 007과 바이바이를.. ㅠㅠ 한편만이라도 더 찍고 물러났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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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페니웨이™ - 2008/07/03 13:36
    한편 더 찍었으면 [살인면허]에 대한 평가도 달라졌을 겁니다.

    문제는 관련자가 몽땅 다 떠나가버려 찍을래야 찍을 수도 없었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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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개인적으로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하지만 도입부의 첫 액션 장면은 최악이라고 생각됩니다.

    로져무어 이후 정확히는 나를 사랑한 스파이 이후 작품에서 도입부의 액션에 약간의

    과잉이 있긴 하지만 ( 가장 최근의 템즈강 보트 체이스 와 북한에서의 액션장면이 가장 오바라고 생각합니다만)

    너무 맥빠지는 액션이었습니다.

    비행기를 헬리콥터로 낚아채는 그 엉성한 장면에서 ( 물론 꽤 까다로운 설정이라는 것을 인정해도)

    비장하게 흐르는 음악이 생각나는 군요. 넘 실망...



    마치 어뷰투어킬에서 로져무어가 여주인공을 시청에서 사다리로 엎고 내려올때의 그 어색한

    음악처럼.....



    살인면허에서 악당을 무찌르기 ( 불에 태우는) 직전의 엉망으로 변한 달튼의 얼굴과 헤어스타일이

    생각나는 군요. 거의 보지 못한 007의 헝클러진 모습이었는데요.



    만약 리빙데이라잇 보다 이작품이 먼저 나왔다면 달튼이 좀더 시리즈를 맡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후 달튼이 나오는 영화를 보면 괜히 마음이 짠해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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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제임스본드 - 2008/07/15 11:49
    제 생각으로는 도입부 액션은 좋은 편이라고 봅니다.

    상당히 현실적이었으니…



    문제는 너무 현실적이어서 007 월드와는 맞지 않았다는 거…



    좋은 댓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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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제임스본드 - 2008/07/15 11:49
    참, [뷰투어킬]에선 워낙 연로하시다보니 다찌마리 뜨긴 어려워서 그런 장면을 넣은 것 같던데, 장르를 알 수 없게 만드는 안습 장면이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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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페니웨이님 블로그를 기웃거리다가 이 블로그를 알게 되었습니다.

    주옥같은 007 리뷰에 벅차오르는 감동이...T.T



    007 시리즈의 매력은 리얼 스파이물이 아니라

    직업만 스파이인 주인공이 등장하는 현대적 판타지물이라는 데 있다고 생각하는 저로서는

    Q의 장비들이 없으면 영화를 보는 재미가 확 줄더군요^^

    그래서 저는 리빙데이라이트에서 Q의 "우리가 없었음 자네 벌써 죽었네"라는 대사를 참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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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붉은비 - 2008/08/08 11:01
    그런 면이 크죠.



    참, 그 대사는 [살인면허]의 대사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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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BLUEnLIVE - 2008/08/08 15:56
    [살인면허]에 나오는 대사였군요...-_-;

    생각해보면 영화의 여러 장면들도 [리빙...]과

    [살인면허] 중 어떤 것인지 헷갈리는 것이 많네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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