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4월 22일 화요일

007 영화 인물열전 : Ernst Stavro Blofe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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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페르시아 고양이, SPECTRE(SPecial Executive for Counter-Intelligence, Terrorism, Revenge and Extortion)의 창시자, 제임스 본드 부인을 죽인 철천지 원수 등으로 유명한, 초기의 제임스 본드 영화들과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캐릭터가 바로 블로펠드입니다.

(초기 블로펠드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고 고양이만 쓰다듬어대는 설정은 유명한 TV 애니메이션 [컴퓨터 형사 가제트]에서 클로 박사로 패러디되기도 했습니다)


1. 소설 속에서의 블로펠드

영화에서 (특히 코너리 시절에서) 블로펠드의 위상은 상당히 컸습니다.
그런데, 소설에서의 그의 모습과 본드와의 관계, 또 시리즈에서의 비중은 영화화는 사뭇 다릅니다.
분명히 소설에서도 본드의 숙적인 것은 분명하지만 말이죠.

블로펠드 및 스펙터가 처음 소개된 소설은 <썬더볼>(1961)입니다.

소설 <썬더볼>은 처음부터 영화화를 염두에 두고 집필되었습니다. 케빈 맥클로리잭 휘팅햄과 함께 공동집필을 했는데, 결국 이것이 이언 플레밍과 EON 프로덕션의 발목을 여러번 잡게 됩니다.

이 발목잡기에 대해서는 은사장님의 포스팅: 007 제임스 본드 전쟁에 자세하게 적혀있으며, 괴작열전(怪作列傳) : 카지노 로얄 (1967) #1에도 일부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 사건은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플레밍의 건강상태맥클로리가 치사하게 이용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플레밍은 건강이 악화되어 법정 밖에서 화해를 하게 되지만, 이듬해인 1964년 사망합니다)

여기서 처음 소개되는 블로펠드와 그의 범죄조직 스펙터(SPECTRE)는 다음 작품인 <나를 사랑한 스파이>에서는 등장하지 않다가 그 다음 작품인 <여왕폐하의 007>과 <두번산다>까지 총 3번 등장합니다.
(보통 이 3 작품을 블로펠드 트릴로지(Blofeld Trilogy)라고 부릅니다)

소설 <썬더볼> 및 <여왕폐하의 007>의 내용은 영화 [썬더볼] 및 [여왕폐하의 007]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소설 <두번산다>의 경우 영화 [두번산다]와 비교하면 지구에서 안드로메다 거리의 100만 배만큼 차이가 납니다. 둘의 공통점이라고는 배경이 일본이란 점과 블로펠드/스펙터의 등장 뿐입니다.

소설 <두번산다>에서 제임스 본드는 일본에 숨어있는 블로펠드를 찾아내고 둘이서 일본도를 휘두르는 등, 엄청난 싸움 끝에 그를 교살해서 죽이지만, 탈출하던 중 자신도 기억상실증에 걸립니다.
(사실, 이런 거친 작품을 우주선이 등장하는 SF로 만들어버린 제작자들은 당시에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봐야 합니다)


2. 영화 속에서의 블로펠드

영화에서는 첫 작품인 [살인번호]에서 Dr. No의 작전부터 스펙터의 음모로 묘사합니다.
(모습을 따로 비추지는 않고, Dr. No가 스펙터를 소개만 합니다.)

그리고, 영화에 처음 등장한 것은 다음 작품인 [위기일발]부터입니다.
사실, 코너리 및 래젠비의 7편 중 스펙터가 개입하지 않은 작품은 [골드핑거] 한 편 뿐입니다.

하지만, 이런 많은 출연에도 불구하고 본드와 블로펠드의 가장 큰 관계인 원한과 복수반쪽만 묘사됩니다.
게다가 무리하게 블로펠드를 자주 등장시키는 바람에 블로펠드의 카리스마가 무너지는 것은 물론 시리즈 간의 연속성이 파괴되는 경우도 발생했습니다.

a. 위기일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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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에 대해 책임이 있는 자를 죽여라! → 부하가 남아나지 않겠군요


본래 이 작품의 원작 소설인 <From Russia With Love>에는 스펙터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소설은 영국 정보국 MI6와 소련 정보국 KGB 산하의 스멜쉬(SMERSH) 간의 암투가 주내용입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이 둘의 관계에 스펙터가 개입함으로써 스파이 스릴러로서의 짜임새가 더욱 보강되었습니다.

그리고, 블로펠드가 영국과 소련 둘 다를 이용하려는 모습과 실패의 원인을 냉혹하게 처치하는 모습은 비록 얼굴을 보이지 않지만, 강렬한 카리스마를 느끼게 합니다.


b. 썬더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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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의 배신자를 제거하는 장면


블로펠드 트릴로지의 첫작품을 영화화한 것 답게 무리없이 스펙터와 블로펠드가 등장합니다.
내부의 배신자를 찾아내서 제거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위기일발]과 마찬가지로 강한 카리스마를 보여줍니다.

재미있는 것은 [위기일발]과 [썬더볼]에서 실제로 블로펠드를 연기한 배우는 [살인번호]에서 덴트 교수 역을 맡았던 앤서니 도손이라는 것입니다.
(위에 물음표로 표시한 것은 영화의 엔딩 크레딧을 흉내낸 것일 뿐입니다)


c. 두번산다 - 도날드 플레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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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드, 넌 임마 두 번밖에 못 살아!


문제는 여기부터 발생합니다.
앞의 두 작품에서 얼굴을 보여주지 않던 블로펠드가 얼굴을 공개하면서 안타깝게도 카리스마가 땅바닥에 추락해버린 것입니다.

원작 소설과는 달리 이 작품은 [여왕폐하의 007]보다 먼저 공개되면서 본드가 굳이 블로펠드를 독품고 죽여야 할 필요성도 사라졌을 뿐더러, [여왕폐하의 007]이 다음 작품이 되면서 블로펠드-본드 관계의 원한이 대폭 줄어들어 버립니다.

 게다가 스파이 스릴러로서의 본분은 완전히 망각한 채 블록버스터로 몸집 불리기에만 신경쓰면서 전체적인 플롯도 엉성하고, 플롯이 엉성해지면서 블로펠드는 카리스마를 잃어버립니다. (ㅠ.ㅠ)

게다가, 이 작품은 제임스 본드 영화에서 2가지 문제를 초래하게 됩니다.
1. 소설에서 그의 성격을 규정지었던 요소 중 하나인 "복수"가 난도질 당하고 제거되었음
2. 시리즈의 연속성이 파괴되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짐


d. 여왕폐하의 007 - 텔리 사발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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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에서 분명히 서로 인사하고도 전혀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는 멍청한 블로펠드


본드역을 맡은 배우가 바뀌어서 그런지, 전작에서 분명히 얼굴을 봤는데도 블로펠드는 본드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물론, 블로펠드가 이렇게 IQ 80으로 전락한 이유는, 이 작품 자체의 문제가 아닌, 전작의 탓입니다.)

이 작품에서 텔리 사발라스는 상당히 현실적인 천재 악당 블로펠드를 연기해냅니다.
하지만, 전작에서 이미 까먹은 블로펠드의 카리스마를 복구해내지는 못합니다.
(이 작품은 플롯이 분명히 훌륭한데, 왠지 힘이 빠져보이는 원인 중 하나는 블로펠드의 카리스마가 다소 부족해보인다는 점입니다)

참고로, 소설 <여왕폐하의 007>에서는 블로펠드의 부관으로 나오는 이르마 분트가 그의 오른팔인 동시에 그의 애인으로 묘사되며 다음 작품인 소설 <두번산다>에서도 계속 같은 비중으로 등장합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그저 카리스마 넘치는 중성적인 이미지로 나옵니다.

이 작품에서 블로펠드가 본드을 왜 못알아봤는가에 대한 가장 그럴듯한 설명은 "시리즈물 설"입니다.
(즉, 먼저 나온 작품의 실제 시간이 먼저가 아닐수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 해석의 문제점은 거꾸로 [두번산다]의 블로펠드의 대사 "James Bond. Allow me to introduce myself. I'm Ernst Stavro Blofeld"가 오류가 된다는 점입니다.
둘은 이미 잘 알고 있을 뿐더러, 철천지 원수 사이인데 말이죠.


e. 다이아몬드는 영원히 - 찰스 그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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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워, 우리 [두번산다]에서 이미 만났지? 아, 아닌가?


얼굴을 보여준 이후의 블로펠드는 계속 카리스마를 까먹을 짓을 반복했는데, 이번에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여기서는 일단 배우 기용에서부터 실수를 합니다.
찰스 그레이는 이미 [두번산다]에서 헨더슨 역으로 얼굴을 비춘 배우였습니다.
게다가, 앞의 두 블로펠드는 대머리였는데, 어느샌가 백발을 기른 상태였습니다.

또한, 제임스 본드 역시, 블로펠드가 전작인 [여왕폐하의 007]에서 자기 부인을 죽인 철천지 원수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대하는 태도가 밍숭밍숭하기 짝이 없습니다.

결국, 영화판 블로펠드 얼굴 트릴로지에서는 소설 및 초기 작품에서 구축한 블로펠드의 카리스마를 계속 깎아먹어버렸습니다.


f. 유어아이즈온리 - 존 힐리스 : 내가 블로펠드라는 것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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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 Bond. 난 블로펠드가 아닌데, 왜 날 죽이려 하시오? Mr. Bond!


한동안 등장하지 않던 블로펠드를 다시 등장시키기로 한 것은 원래 [나를 사랑한 스파이]였습니다.
(즉, 스트롬버그 박사는 원래 블로펠드로 계획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007 영화 역사상 최강의 딴지의 제왕이었던 케빈 맥클로리가 계속 태클을 걸자 대본을 수정해버린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유어아이즈온리]에 와서는 아예 블로펠드를 제거해버리기로 합니다.

문제는 이 시점에서 맥클로리는 썬더볼과 더불어 스펙터블로펠드에 대한 독점적 권리를 보장받은 상태였기 때문에 "블로펠드를 제거한다"고 말을 할 수도 없는 상태였다는 점입니다.

제작진에서는 이름을 전혀 언급하지 않고, 또한 얼굴도 비춰주지 않고, 굴뚝에 밀어넣어 제거해버립니다.
이를 통해 맥클로리에게 명백한 메시지를 보내려고 한 것이죠.

제임스 본드는 블로펠드나 스펙터가 없어도 충분히 재미있게 만들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이 선택은 현명했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초기와는 달리 스펙터의 약발이 후기에는 깔끔하게 먹히지도 않았는데, 맥클로리가 물고 늘어진 것은 약발이 떨어진 스펙터였습니다.

그렇다면, EON 프로덕션에서는 이것을 같이 물고 늘어질 필요가 없던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유어아이즈온리]에서 다시 초기의 블로펠드의 얼굴을 비추지 않는 스타일을 재현하는데, (잠시나마) 카리스마가 더 살아나보였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굴뚝에 밀어넣기 직전에 죽이지 말아달라고 비는 장면에서 잠깐 살아났던 카리스마는 완전히 무너집니다.

이 장면을 마지막으로 EON 프로덕션의 공식적인 007 영화에서는 블로펠드는 자취를 감추고 맙니다.





지금 시점에서 보면 딴지의 제왕 맥클로리도 사망했고, 제임스 본드 시리즈는 재부팅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스펙터와 블로펠드도 재부팅하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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